중견기업에 다니는 A 부장은 진급 후 사람이 변했다. 부장이 된 후 말끝마다 “하라면 해”를 달고 산다. 부하 직원의 말을 듣는 척하다가도 마지막엔 자기 의견만 쏟아낸다. 직원들은 기를 펴지 못한다. 그럴수록 A 부장은 더 신이 난다. 자신이 엄청난 힘을 가진 것을 매일 실감할 수 있으니까. 차장 시절 그는 ‘점잖고 겸손한 사람’으로 통했다. 그의 ‘변신’은 주변 사람들을 당혹스럽게 한다.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전개하기 전에 당신이 자신의 손가락 열 개를 한번 들여다볼 것을 권한다. 오늘 이야기는 ‘눈에 보이지 않는 반지’에 관한 것이다.
영국 작가 J R R 톨킨의 소설 ‘반지의 제왕’에는 절대반지가 등장한다. 이 반지를 끼기만 하면 누구나 천하무적이 된다. 그런데 부작용이 있다. 반지는 그 주인을 변하게 한다. 그것도 나쁜 방향으로 말이다. 절대반지의 주인은 남의 아픔에 둔감하고, 자기 이익만 생각하며, 끊임없이 주위 사람들을 의심하게 된다.
소설 속 절대반지는 사실 현실에서 흔히 일어나는 일의 은유다. ‘완장’을 차면 변해버리는 사람들은 여러분 곁에도 많다. 그들이 변하는 이유는 갑자기 늘어난 스트레스 때문일 수도 있고, 남의 눈치를 보느라 숨겨뒀던 본모습이 드러나서일 수도 있다. 힘이 생겼으니 더이상 단점을 숨길 필요가 없지 않은가. 절대반지를 끼는 순간 보살(菩薩)도 야차(夜叉)가 되어버린다. 그들의 눈에는 남의 아픔이 보이지 않고 자신의 권력만 보인다.
이런 점에서 절대반지의 가장 큰 해악은 공감능력을 상실케 한다는 데 있다. 전우영 충남대 교수(심리학)는 ‘권력의 맛’이 두뇌 속 ‘거울 뉴런’(사람이 타인의 행동에 반응하게 함)을 마비시켜 공감능력을 갉아먹는다고 지적한다. 절대반지가 선사하는 권력은 누군가에게 마음껏 상처를 줄 수 있는 능력이며, 세상이 자기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처럼 느끼게 만든다.
중요한 것은 공감능력이 없으면 결코 좋은 리더가 될 수 없다는 점이다. 기자는 몇 해 전 세계적인 헤드헌팅 업체 이곤젠더의 데이미언 오브라이언 최고경영자(CEO)를 만났다. 그는 좋은 인재를 뽑는 기준 중 공감능력으로 대표되는 감성적 역량이 가장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감성지수(EQ)가 지능지수(IQ)보다 CEO의 성공에 더 큰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은 이미 학문적으로 증명됐습니다. CEO는 사내외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활발히 의사소통하며, 그들에게 영감을 불어넣는 사람이니까요.”
절대반지의 권력은 그 주인을 버려놓을 뿐만 아니라 기업에도 해가 된다. 무분별한 권력 남용의 분위기는 너무나 쉽게 리더를 넘어 기업 전체로 퍼진다. 기업이 절대반지를 끼게 되면 그 회사 앞에는 곧 ‘멸망의 문’이 활짝 열린다. 공감능력이 없는 기업은 치열한 경쟁의 시대에 살아남을 수 없다. 성공의 열쇠인 고객의 마음을 읽을 수 없으니까 말이다.
세계적인 경영학자 필립 코틀러는 “마케팅이란 고객의 욕구를 알아내 그것을 충족시키는 행위”라고 말했다. ‘현대 경영학의 아버지’ 피터 드러커 역시 “모든 비즈니스는 고객이 누구인지 아는 것에서 출발한다”고 했다. 현대 마케팅의 전제는 “나는 틀릴 수 있다. 고객이 언제나 옳다. 고객의 마음을 읽어라”이다.
한때 잘나가던 수많은 기업이 이렇게 간단한 명제를 무시하다 사라져갔다. 그들의 손가락에 끼워져 있던 절대반지가 시야를 좁히고 귀를 막은 탓이다. 그들에겐 고객과 직원들의 모습과 목소리가 보이지 않고, 들리지 않았다.
이제 다시 당신의 손가락을 바라보라. 절대반지가 보이는 듯싶으면 ‘오만함 지수’란 것도 한번 계산해 보라. ‘오만함 지수(AQ·Arrogance Quotient)=자만심÷본인의 실력’이다. 여기서 실력이란 회사 배지나 직위가 없을 때의 ‘전투력’을 뜻한다. 만약 AQ가 너무 높게 나왔다면 자만심을 줄이거나 실력을 키워야 한다. 절대반지를 빼버리는 것도 잊지 마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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