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박경미]선택형 수능의 딜레마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3일 03시 00분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선택형 대학수학능력시험의 실시와 유보를 놓고 팽팽한 긴장 관계가 형성되면서 올해 수능은 시한폭탄이 됐다. 선택형 수능은 학생들 수준에 맞춰 시험 유형을 세분화함으로써 학습 부담을 경감시키자는 ‘착한’ 의도에서 출발했다. 선택형 수능 도입 당시 문과 학생들이 쉬운 수학 시험을 보는 만큼 이과 학생들도 쉬운 국어 시험을 볼 권리가 있다는 점이 공감을 얻었다.

선택형 수능이 시행되면 적어도 한 과목은 쉬운 A형을 선택하므로 사교육 억제 효과가 있을 거라 예측했다. 그러나 학교에서 어려운 B형에 대응할 수 있는 교육을 충실히 제공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고, 따라서 학원을 찾는 수요는 여전하다. 그뿐만 아니라 국어와 영어 A형을 보는 예체능계 학생과 B형을 준비하는 인문계 학생이 한 반을 이루기 때문에 이동식 수업이 필요하지만 학교 현장에는 그럴 만한 여력이 없다. 새 정부 공약 중 하나가 대입 전형 단순화인데 전형 개수가 줄어도 A, B형의 선택과 가산점이 얽히면서 수험생 입장에서는 경우의 수가 늘어나게 된다. 이처럼 고려사항이 복잡해지면 불안감이 증폭돼 대입 컨설팅은 더 창궐하게 된다.

A, B형 구분도 문제다. 국어 A형은 문학1, 독서와 문법1, 화법과 작문1을 출제범위로 하고, B형은 문학2, 독서와 문법2, 화법과 작문2를 범위로 한다. 그런데 국어과목의 특성상 문법을 제외하고는 난이도의 구분이 모호하다. 수학은 별문제 없이 수리 가형과 나형으로 구분해 실시했지만, 이는 수학의 내용 요소가 위계적으로 차별화되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으로, 국어나 영어는 그렇지 않다.

선택형 수능안은 2011년 1월에 발표됐지만 수능을 주관하는 측은 1% 만점자와 EBS 70% 연계에 허덕이면서 새 수능에 대비하지 못했다. 선택형 수능에 별 관심을 보이지 않던 대학들은 이제 와서 우려의 목소리를 내고 있다.

많은 문제의 소지를 안고 있는 선택형 수능이지만 ‘강행에 따른 부작용’과 ‘유보에 따른 혼란’ 중 선택하라면 그래도 전자가 바람직하다. 단, 부작용을 줄이기 위한 몇 가지 보완조치가 필요하다. 첫째는 모의평가 횟수를 늘리는 것이다. 올해 평가원 주관의 모의평가는 6, 9월로 예정돼 있다. 그러나 상황이 상황이니만큼 특별예산과 인력을 투입해서라도 횟수를 늘려야 한다. 모의평가라는 시뮬레이션을 통해 출제자들은 A, B형의 난이도와 변별력을 조정할 기회를 갖고, 수험생들은 유형에 따른 시험 난이도에 적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모의평가의 A, B형 성적 분포를 상세하게 밝히는 등 수험생의 판단을 돕는 정보를 충실하게 제공해야 한다. 둘째는 유형에 따른 가산점 부여 방식을 측정학적으로 객관화하는 것이다. 현재 A, B형을 모두 허용하는 중하위권 대학에서는 B형에 5∼30% 가산점을 부여하는데, 이런 일률적인 방식이 아니라 정교한 보정 공식을 개발해야 한다. 예를 들어 A, B형에는 공통문항이 있으므로 A, B형을 치른 수험생 집단의 평균과 표준편차를 반영해 B형의 가산점을 합리적으로 산정할 수 있을 것이다.

선택형 수능과 관련된 현재의 딜레마 상황에서는 최악이 아닌 차악을 고르는 게 최선이다. 수험생의 예측 가능성과 정책의 일관성을 위해서는 보완 대책을 세우면서 선택형 수능을 원안대로 실시하는 것이 현실적인 선택이다.

박경미 홍익대 수학교육과 교수
#선택형 수능#딜레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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