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택시를 대중교통수단으로 인정하는 ‘대중교통 육성 및 이용촉진법’ 개정안(일명 택시법)에 거부권을 행사했다. 국회를 통과한 법률에 대해 대통령이 거부권을 행사한 것은 현 정부 들어 처음이고 제헌국회 이후 72번째다. 여야 지도부는 일제히 “국회를 무시하는 처사”라고 비판했고 택시업계는 파업도 불사하겠다며 반발하고 있다.
어제 열린 국무회의에서 국토해양부 등 관련 부처 장관들은 택시법이 전세버스 여객선 등 다른 교통수단과의 형평성에 어긋난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택시를 정해진 운행시간과 노선이 있는 버스 지하철 같은 대중교통으로 분류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 다른 나라에도 유례가 없다. 정부는 무엇보다도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의 세금으로 정작 도움을 받아야 할 택시기사가 아닌, 택시업체만 득을 볼 수 있다며 반대하고 있다. 택시법이 시행되면 재정 부담의 대부분을 떠안게 될 지자체장들의 모임인 시도지사협의회도 이 법에 반대 의사를 밝혔다.
이제 공은 국회로 넘어갔다. 민주통합당 박기춘 원내대표는 이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에 대해 “사회적 합의를 깨고 갈등을 촉발시킬 뿐”이라며 반드시 재의결을 추진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달 1일 여야가 합의해 국회의원 222명의 찬성으로 이 법을 통과시켰기 때문에 재의(再議)를 하면 다시 통과될 가능성이 높다. 재의 안건은 국회 재적의원 과반(151명) 출석에 3분의 2 이상만 찬성하면 그대로 확정된다.
여야 의원들은 1조 원 이상의 재정부담을 초래할 법에 대해 공청회도, 지자체 의견을 듣는 공론화 과정도 거치지 않았다. 지난해 18대 대선을 앞두고 30만 명에 이르는 택시업계 종사자들의 표만 의식했을 뿐이다. 이 법의 재의 여부는 여야가 그토록 공언해온 정치개혁의 시험대가 될 것이다. 여야가 진정으로 정치개혁 의지가 있다면 재의보다는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할 것이다.
정부는 어제 택시법 대신 ‘택시운송사업 발전을 위한 지원법(택시지원법)’을 제정하겠다고 밝혔다. 대중교통법을 개정한 택시법은 적자보전, 환승할인 등 주로 택시회사에 혜택이 많이 돌아간다. 반면 새로 마련할 택시지원법안은 감차(減車) 보상, 복지기금 마련 등 택시기사의 근로 여건을 개선하고 승차거부 방지 등 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방안을 담고 있다. 정부는 택시업계와 전문가, 시민들의 의견을 수렴해 납득할 만한 지원법안을 마련해야 한다. 국회는 택시법 재의에 집착할 일이 아니라 택시 종사자들에게 실질적 혜택을 줄 수 있는 지원방법을 고민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