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희 칼럼]장 발장과 마리위스의 세대 통합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4일 03시 00분


정성희 논설위원
정성희 논설위원
관객 600만을 향해 순항하고 있는 뮤지컬영화 ‘레미제라블’의 배경은 1832년 파리 6월 봉기다. 프랑스혁명(1789년)-7월혁명(1830년)-2월혁명(1848년)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공화제 투쟁과정에서 7월혁명으로 쫓겨난 샤를 10세 대신 옹립된 루이 필리프에 대한 일부 공화주의자들의 불만이 봉기로 표출된 사건이다. 6월 5일부터 7일까지 ‘3일’로 끝난 바리케이드 대치에서 시위대는 93명이 죽고 291명이 다쳤으며 진압군은 73명 사망에 344명이 부상했다.

20년 후 마리위스도 봉기할까

6월 봉기의 주축은 학생과 노동자, 부랑아들이었다. 영화에서 진압군의 대포를 피해 학생들은 민가(民家)로 뛰어들지만 파리시민은 냉정하게 문을 닫는다. 이튿날 여인들은 학생들의 헛된 죽음을 애도하며 해가 바뀌어도 달라지는 것은 없다고 노래한다. 실제로 6월 봉기는 민중의 지지를 받지 못했고 봉기를 진압한 루이 필리프 왕이 되레 민중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세대갈등이 극명했던 지난 대선의 여운이 남아서인지 봉기의 리더인 앙졸라가 부른 ‘빨강과 검정(red and black)’이란 노래가 의미심장하게 다가왔다. 빨강은 새로운 시대, 검정은 구시대를 상징한다. 현재 한국의 시대상황을 당시 프랑스와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18대 대선 결과를 보며 2030세대 중에는 6월 봉기에 실패한 청년들과 비슷한 심경인 사람도 있을 것이다.

영화와 소설은 여기에서 끝나지만 역사는 이어졌다. 16년이 흐른 1848년 프랑스에선 제2공화정이 들어선다. 그때쯤 부르주아 출신이지만 가문을 버리고 사랑과 우정에 목숨을 걸었던 마리위스는 어떻게 됐을까. 30대 중후반의 마리위스는 봉기보단 점진적 개혁을 추구할 것이라고 멋대로 상상해본다. 나이가 사람을 보수화시킨다. ‘20대에 사회주의자가 아닌 사람은 바보, 40대에 사회주의자인 사람도 바보’라는 말은 시대를 꿰뚫는 명언이다.

지난 대선 때 투표를 못하도록 부모의 주민등록증을 감췄다는 20대가 있는가 하면 자식들에게 스키장에 놀러가라고 용돈을 주었다는 중장년도 있었다. 대선 직후 지하철 노인 무임승차 폐지 청원이 일어났다. 노청(老靑) 갈등도 지역과 이념 갈등 못지않게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됐다. 미국 국가장애위원회 부위원장인 페르난도 토레스길 로스앤젤레스 캘리포니아대(UCLA) 교수가 ‘세대 간 공존’이 21세기의 가장 큰 문제라고 예측한 그대로다. 우리보다 먼저 고령사회에 진입한 유럽을 보더라도 연금 개혁에 반대하는 중장년층, 등록금 인상에 반대하는 대학생, 일자리를 찾지 못한 청년 폭동은 자원 배분과 일자리를 놓고 세대가 벌이는 생존 게임과 다를 게 없다.

이념은 인간을 넘어서지 못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우리 사회 세대갈등이 과장된 측면이 있다고 생각한다. 유럽의 등록금 투쟁은 공짜이던 등록금을 내라고 하는 데서 비롯됐지만 우리나라 대학생들의 반값등록금 요구는 고생하는 부모의 부담을 덜어주자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많은 5060이 자신들이 잘살자고 투표한 것이 아니라 미래세대(자녀)를 위해 투표했다고 말한다. 20대 백수 자녀를 위해 50대에도 허드렛일을 마다 않는 게 우리 부모들 아닌가. 다만 세대별로 공유하는 이상적 가치의 기준과 방법이 달랐을 뿐이다.

가족의 가치와 사회적 개념으로서의 세대도 구분 못하느냐는 비판이 있을 줄 안다. 하지만 레미제라블이 보여주듯 인간을 넘어서는 이념은 없고 가족애를 넘어서는 세대 갈등도 없다. 장 발장은 마리위스가 지향하는 공화정을 이해하지 못하지만 그를 살리는 것이 사랑하는 딸(코제트)을 위한 길이라는 걸 안다. 지금의 청년들도 나이를 먹으면서 그들이 비난하던 기성세대에 편입돼 간다. 세대 갈등의 반전(反轉) 속에서 역사가 흐르는 것이다.

정성희 논설위원 shchung@donga.com
#레미제라블#장 발장#마리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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