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 씨는 ‘1인 기업’의 사장이다. 삼십대 중반에 글로벌 기업의 한국 대표까지 올랐다. 초고속 승진을 하면서 회사 규모를 4배로 키워냈다. 마흔 살이 되자 사표를 썼다. 일에 쏠려 있는 삶의 균형을 되찾기 위해서였다. 회사가 평생 일터가 될 수 없다는 판단도 한몫했다.
이후 KAIST의 박사 과정에 등록했다. 돈은 벌어야 해서 혼자 회사를 차렸다. 기업을 대상으로 커뮤니케이션과 위기관리 등을 주제로 워크숍이나 컨설팅을 하는 기업이다.
사무실은 서울 광화문의 대형빌딩에 있다. 1인 기업이지만 비서도 뒀다. 빌딩 내 비즈니스센터에 입주해 다른 입주사와 비서를 공유한다. 그는 이곳에서 외부 연락을 받고 고객과 미팅을 한다. 일이 몰리면 야근을 하지만 삶에 대한 만족도는 높아졌다. 주말에 일하지 않는 대신 가족과 밥을 먹고 종교 생활을 하게 됐다. 또 목공소에서 원목 가구를 만들기 시작했다. 그는 “세상에는 일 말고도 재미난 게 많다는 것을 알게 됐다”고 했다.
K 씨는 자신을 끊임없이 ‘연구개발(R&D)’해야 했다. 지식서비스 산업의 상품을 생산해내는 주체가 바로 자신이기 때문이다. 최근엔 미국과 일본에 출장을 다녀왔다. 해외 전문가들에게서 지식과 노하우를 흡수해 국내 고객들에게 전달하기 위해서다. 지식서비스라는 상품을 수입해 국내 환경에 맞게 가공한 뒤 이를 되파는 셈이다.
K 씨의 사례는 ‘미래형 일자리’의 전형을 보여준다. 그는 ‘만만한 자영업’에 뛰어드는 여느 창업자와 달리 부가가치가 높은 지식서비스 산업을 택했다. 2007년 창업한 그는 웬만한 중견기업의 임원 못지않은 소득을 올리고 있다. 마땅한 전문성을 갖추지 못하고 은퇴 후 창업에 나서는 대다수의 직장인들과 확연하게 다른 커리어 패스(career path·직업 경로)다.
직장인들은 50대 이후를 두려워한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지난해 신설법인은 7만 개를 돌파해 2000년 관련 통계작성을 시작한 이후 사상 최대였다. 은퇴한 베이비 부머(1955∼1963년생)가 대거 창업에 나선 탓이다. 결과는 암울하다. 통계청에 따르면 신생 기업의 90%는 1인 기업(2011년 기준)이지만 이 중 5년 뒤까지 생존하는 기업은 10곳 중 3곳뿐이다. ‘내가 하는 사업은 다르겠지’라는 생각에서 시작하지만 대부분 도·소매, 음식, 숙박업처럼 부가가치가 낮고 경쟁이 심한 ‘레드오션’에서 허덕이기 때문이다. ‘사장님’이 돼도 돈에 쪼들리고 인생을 즐기지 못하는 셈이다.
곧 박사 과정을 마치는 K 씨는 앞으로도 1인 기업 체제를 이어가기로 했다. 그는 “스스로 전문성을 키우지 않으면 유행에 뒤떨어지는 상품을 출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제는 ‘평생직장’이 아닌 ‘평생직업’을 찾아야 하는 시대”라고 했다. 남들보다 빨리 커리어 무브(career move·커리어 전환)를 시도한 K 씨의 사례는 은퇴가 그저 막막하기만 한 대한민국 직장인들에게 참고가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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