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로비는 아무나 지나다니는 곳이 아니다. 대법원장과 대법관, 법원행정처 고위 간부들의 출퇴근 길목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에서 일하는 판사나 법원 직원들은 어쩌다 이곳을 지나다가 고위 간부들과 마주치면 한 발 물러서며 고개를 숙인다. 그래서 출퇴근 시간이나 점심시간에 로비는 오히려 한적하다. ‘어색한 순간’을 피하려고 일부러 지하 1층으로 돌아서 다니는 직원도 적지 않다.
그런데 대법원 고위 간부들이 주로 다니는 1층 로비가 왜 대법원에서 가장 추운 곳이 된 걸까. 사연을 이해하려면 먼저 대법원 1층 출입문 구조부터 살펴봐야 한다. 출입문 한가운데에는 양 옆으로 열리는 커다란 자동문이 있고 그 양쪽으로 벽을 두고 회전문 2개가 달려 있다. 그리고 자동문을 지나 바깥쪽으로 몇 걸음 옮기면 직접 손으로 여닫는 커다란 문이 달린 이중문 구조다. 문제는 바깥쪽 여닫이문이 하루에 몇 시간씩 활짝 열려있어서 찬바람이 안으로 쉽게 들어온다는 것이다. 애써 만든 이중문을 열어놓는 이유는 무엇일까.
하루만 이곳에 서서 유심히 관찰해보면 궁금증은 쉽게 사라진다. 1층 로비 바깥쪽 여닫이문은 오전 8시가 조금 넘으면 열린다. 출근하는 대법원 고위 간부들을 맞이하기 위해서다. 문은 출근이 끝날 때까지 1시간 넘게 열려 있다. 그사이 매서운 찬 공기가 안쪽 자동문의 빈틈을 비집고 들어와 로비를 가득 채우고 넘쳐 건물 곳곳으로 흘러들어간다. 여기서 고위 간부들을 맞는 대법원 방호원들이 실내에서 일하는데도 무릎 아래까지 오는 두꺼운 방한복을 입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여닫이문은 점심 무렵이 되면 점심 약속을 나가는 고위 간부들을 위해 다시 열려 이들이 점심을 마치고 청사로 돌아올 때까지 열려 있다. 여닫이문은 저녁 퇴근 시간에도 어김없이 활짝 열려 찬바람을 통과시킨다. 어림잡아도 하루에 네다섯 시간 이상 열려 있는 셈이다. 날씨가 아무리 추워도 아랑곳없이.
‘막말 판사’나 ‘튀는 판결’ 등으로 국민의 비난을 받을 때마다 대법원은 “권위적인 법원의 모습에서 벗어나 국민의 눈높이에서 소통하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법원이 권위적인 관행을 벗어던졌는지 국민들은 여전히 확신하지 못한다. 대법원 고위 간부들의 출퇴근 풍경에서 권위적인 법원을 느꼈다면 무리일까. 몇 사람 잠깐 편하자고, 한겨울에 몇 시간 동안 커다란 문을 열어놓기보다 그 ‘몇 사람’이 출퇴근할 때 스스로 문을 여닫으라고 하는 것은 너무 무례한 요구일까. 더구나 정부가 올겨울 전력대란을 막기 위해 출입문을 열어놓고 영업하는 업소에 최고 300만 원의 과태료까지 물리고 있지 않은가. 법원의 권위 버리기는 거대 담론이 아닌 작은 실천에서부터 시작해야 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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