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봉 5000만 원인 근로자가 지난해 종교단체 등에 1000만 원을 기부했다면 올해 초 연말정산에서 전액을 소득공제 받는다. 하지만 내년부터는 달라진다. 신용카드나 교육비, 의료비, 보험료 같은 다른 소득공제 항목의 지출이 크거나 지정 기부금 액수가 너무 많으면 세금을 다 돌려받지 못한다. 정부가 조세특례제한법을 개정해 지정 기부금을 포함한 8개 항목의 소득공제 한도를 2500만 원으로 슬그머니 묶어버렸기 때문이다. 8개 항목을 합친 소득공제 금액이 2500만 원을 넘긴 부분에 대해서는 세금을 돌려주지 않는다는 뜻이다.
우리 기부문화는 초기 단계다. 한국의 경제 규모는 세계 15위지만 기부지수는 지난해 45위에 그쳤다. 사회 양극화 해소를 위해서라도 기부문화를 더 확산시킬 필요가 있다. 국가가 기부를 장려하기는커녕 오히려 기부금을 많이 낸 사람에게 불리하게 세법을 설계한 것은 기부문화에 찬물을 끼얹는 일이다. 국민권익위원회는 2009년 기부문화 활성화를 위해 개인 지정 기부금 소득공제를 과세대상 소득의 15%(2008년)에서 선진국 수준에 근접하는 30%까지 늘릴 것을 권고했다. 기획재정부는 이를 받아들여 지난해 공제 비율을 30%로 늘렸지만 1년 만에 한도 설정이라는 꼼수로 시곗바늘을 뒤로 돌렸다.
재정부는 공제 한도를 넘는 지정 기부금은 최대 5년간 나눠서 공제받을 수 있고 국가와 지방자치단체,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학교, 병원에 낸 법정 기부금은 전액 공제가 가능하다고 설명한다. 기부금을 많이 낼 형편이 안 되는 중산층과 서민에겐 이번 세법 개정이 별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해명했다. 그렇다고 해서 가수 김장훈 씨 같은 고액 ‘기부 천사’들에게 더 많은 세금을 내도록 하는 일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지난해 말 국회가 새해 예산안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재정부가 급하게 법안을 제출하고 국회가 그대로 통과시켰기 때문에 이런 일이 벌어졌다. 두 기관은 책임을 져야 한다.
정부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약속한 복지 공약을 뒷받침하자면 쌀독을 박박 긁어야 할 형편이다. 전국 2만여 개 지정 기부금 단체 가운데 일부 단체가 가짜 기부금 영수증을 멋대로 발행해 세금을 내지 않도록 방조하는 사례는 뿌리 뽑아야 한다. 하지만 정부가 종교인 과세에 대해서는 “사회적 공감대 확산이 필요하다”며 어물쩍 넘어가면서 직장인의 ‘유리 지갑’에서 세금을 더 많이 걷으려는 것은 옳지 않다. 기부금 단체를 지정하는 심사와 사후 관리는 강화해 나가되 원칙도 절차도 무시한 조세특례제한법은 원래대로 재개정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