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통령선거 승부는 갈렸다. 51.6% 대 48%. 치열했던 만큼 후유증을 걱정하는 목소리도 높았다. 슬로건이던 국민대통합을 이제는 어떻게 이루어 낼지 실천의 문제가 남았다. 동아일보 독자위원회는 21일 ‘대선 후 국민통합과 언론보도’를 주제로 토론을 벌였다. 》
―대선 후 처음 열리는 자리인 만큼 최근 정치권 움직임과 사회적 이슈를 짚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대선 과정에서 유권자들이 두 쪽으로 갈라섰고 한때 갈등 양상도 빚어졌습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도 국민통합을 화두로 꼽고 있습니다. 앞으로 새 정부가 갈등을 치유하면서 통합을 어떻게 이루어 내야 할지 고민해 보는 자리가 됐으면 합니다. 최근 동아일보를 비롯한 언론 보도에 대해서도 어떤 평가를 하고 있는지 자유롭게 말씀해 주십시오.
이진강 위원장=대선 결과를 보고 얻은 교훈이 있습니다. 상대와의 차이를 인정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51 대 48로 갈라진 이번 대선 결과를 갈등의 표출로 볼 수도 있지만, 상대방과의 차이가 드러난 상황으로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양쪽 모두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다는 얘깁니다. 서로 차이를 인정하면서 조금씩 자기를 낮춰 양보하는 것이 사회와 국가 발전에 도움이 될 것입니다.
이주향 위원=(당선되지 못한 후보에게 표를 준) 48%의 국민 중에는 멘붕(멘털 붕괴)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적지 않습니다. 이 수치는 폭발 가능성이 있다는 걸 의미합니다. 이번 선거가 부정선거라는 말까지 합니다. 사실 여부에 관계없이 믿고 싶은 사람이 많다는 건 여론이 폭발할 수 있다는 의미입니다. 대통합이 되려면 48% 국민의 목소리를 잘 들어야 합니다.
김동률 위원=통합과 갈등의 측면에서 지금 우리 사회는 심각합니다. 부정선거까지 얘기하는 젊은 세대를 우리가 어떻게 감당해야 할지 참담합니다. 일각에서 부정선거라고 주장하는 것에 문재인 후보가 직접 “아니다”라고 말했지 않습니까. 왜 언론이 이 같은 기사에 주목하지 않습니까. 갈등과 통합을 다들 말하지만 기본 원칙이 필요합니다.
이 위원장=멘붕 같은 얘기가 나오는 것은 양쪽이 다 이길 생각만 했지 진다는 생각은 안 했기 때문입니다. 질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해야 합니다. 그래야 졌을 때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이긴 쪽은 오만과 편견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진 쪽은 국민에게 실망과 변명을 많이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거 다 버려야 합니다. 승부에 관계없이 새로 출발해야 합니다. 언론은 건전한 여론 형성에 기여할 책임이 있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문재인 전 후보가 패배를 인정하고 상대방에게 축하 전화를 한 것은 민주주의가 엄청나게 진보한 결과입니다.
―선거를 치르면 승자와 패자가 나옵니다. 양측이 화합하려면 이긴 쪽에서 먼저 양보를 해야 합니다. 그러면 진 쪽에서도 반응을 하지 않겠습니까. 국민 48%가 새 정부의 정당성에 수긍하고 애정을 가져야 가능합니다. 이 때문에 새 정부의 인사는 매우 중요합니다. 이명박 정부가 초기에 힘이 있었더라면 여야 모두 발전하는 계기가 될 수 있었습니다. 인사 논란과 쇠고기 파동으로 힘을 잃어 화합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나, 되돌아보게 됩니다.
김사중 스탠더드에디터=대선 결과 나타난 51 대 48 구도는 단순 수치만으로 볼 때 한국 정치 지형에 양당제가 정착되는 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진보와 보수가 대등하게 겨뤄 이겼다고 자만하지 말고, 졌다고 패배의식에 젖을 필요도 없다는 국민의 메시지가 담겨 있다고 봐야 할 것입니다. 누리꾼들은 대통합 탕평인사와 관련해, 호남 총리가 필요하다는 일각의 주장에 대해 특정 지역을 떠나 능력과 인품을 갖춘 인재가 총리로 발탁돼야 한다는 의견을 보였습니다. 진정한 통합은 나눠 먹기 식의 인사가 아니라 차별 없는 균형 정책을 통해 지역 격차를 해소할 때 이뤄진다는 것입니다. 새 정부의 첫 조각은 지역 안배 구도를 벗어나 국리민복을 위해 희생할 수 있는 인사들로 충원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박제균 스탠더드에디터=한국의 대통령 선거도 미국처럼 축제가 되어야 합니다. 대선이 끝나니 ‘또 다른 5년의 전쟁’이 시작된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5년 후 승자로 내세울 사람을 찾으며 새로운 5년 전쟁을 기획한다는 얘기입니다. 심하게 싸우다 보니 이렇게 된 것이지요. 여기엔 완승주의, 단임제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갈등 문제가 그 정도로 심각하냐는 부분에 대해서는 생각이 좀 다릅니다. 대선이 끝나고 여론조사를 했더니 반대편 사람들도 박근혜 당선인이 잘할 거라 기대한다고 답했습니다. 마음에 안 들어서 상대편을 찍긴 했지만 나라가 파탄나지 않기를 원하는 마음입니다. 그러려면 역시 박 당선인이 인사를 잘해야 하는데, 인사라는 게 누구를 발탁하느냐도 중요하지만 이에 못지않게 문제가 있는 인사를 얼마나 잘 쳐내느냐도 중요합니다.
이형삼 스탠더드에디터=언론이 제대로 알려야 된다는 말은 새겨들어야 합니다. 제가 겪은 세대 간의 갈등은 골이 아주 깊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박근혜 당선인과 관련한 대학생들의 대화를 들은 적이 있는데, 적대감까지 표출돼 나오는 것을 들었습니다. 지금이 1980년 5월 상황이 아닌데도 그들에게 어떤 피해를 줬는지는 의문입니다. 지금 젊은층이 겪는 피해의식은 장년층이 타깃인데, 언론이 잘못된 것이라고 제대로 알려야 합니다. 복지문제가 누구 걸 뺏어서 다른 이들에게 주는 게 아닙니다. 갈등 관점에서만 볼 수 없는 걸 잘 전달해야 합니다.
이 위원장=주제를 인사로 돌려 보죠. 인사에서 제일 중요한 건 능력입니다. 능력 있는 사람을 뽑아서 일을 시켜야 합니다. 둘째, 인성을 갖춰야 합니다. 인성이란 쉽게 말하면 염치로 볼 수 있죠. 세 번째로 사심이 없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인사는 선거에서 이긴 쪽이 뽑아서 쓰는 것입니다. 능력과 인성을 갖추고, 사심 없으면 됩니다. 고전을 읽으니 이런 부분이 있더군요. 시골의 면장은 읍장의 능력, 읍장에는 군수의 능력을 갖춘 사람이 가야 합니다. 군수는 도지사 정도의 능력 있는 사람. 장관은 정승 정도 능력을 가진 사람에게 자리를 줘야 한다는 겁니다. 최근 인사에서 보안을 강조하는 것은 긍정적으로도 볼 수 있지만, 밀봉 인사로까지 비친 것은 그다지 좋게 보이진 않습니다.
김 위원=어려움을 겪는 사람이 많은데, 요즘 (정치권 인사들의) 사면 복권이나 특사 같은 얘기가 나오는 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걱정하는 마음에서 볼 때 절차의 정당성이 사라진 나라는 우울하고 암담합니다.
이 위원=통일 문제도 중요합니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했다면 통일 논의가 저항을 받을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박근혜 정부에서는 통일 논의가 활발히 이루어질 수도 있다고 봅니다.
김 위원=세종시 이야기도 해 보고 싶습니다. 많은 사람은 세종시에 가는 공무원들을 선택받은 분들로 생각합니다. 식당에 좀 줄을 서고, 서울에 왔다갔다 많은 시간이 걸리고 하는 게 그렇게 고통스럽고 힘들다고 생각할까요? 언론이 그런 부분을 계속 지적하는 것도 문제라고 봅니다.
박 스탠더드에디터=세종시에서 눈여겨볼 것은 공무원들이 겪는 불편함이 아니라 세종시 이전으로 생긴 국정의 비효율이겠죠.
―지지 여부를 떠나 새 정부가 안정돼야 합니다. 소모적인 논쟁으로 큰 싸움이 벌어지면 나라 전체가 문제입니다. 새 정부 인사에서 안배형 인사가 꼭 필요할까 싶습니다. 언론에서도 계속 쓰고 있는 탕평인사라는 용어도 과연 꼭 필요한 것일까요?
이 위원장=당파성을 다 없애고 골고루 쓴다는 게 탕평일 것입니다. 말씀드린 것처럼 인사를 할 때 기본적으로 고려할 점을 지키면 곧 탕평입니다. 구태여 지역, 세대, 남녀 구별할 필요가 있습니까. 국민도 능력과 인성을 중시하며 사심 없고 신뢰할 만한 인사가 이루어지길 원합니다. 그런 사람을 국민 앞에 내세우면 지역 고려 안 했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습니다. 승자와 패자가 함께 대한민국을 창조해 갈 수 있도록 언론이 격려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되려면 인사와 정책연합 등 여러 여건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물론 소통 또한 중요하겠죠. <참석자>
● 위원장 이진강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 ● 위원 김동률 서강대 MOT대학원 교수 이주향 수원대 교수 박제균 편집국 스탠더드에디터 이형삼 출판국 스탠더드에디터 김사중 동아닷컴 스탠더드에디터 ● 사회 박태서 미디어연구소장
정리=김동원 기자 daviskim@donga.com 이정규 인턴기자 동국대 사회학과 4학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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