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설 명절을 앞두고 29일경 특별사면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한다. 특정 범죄인에 대해 형의 집행을 면제하거나 유죄 선고의 효력을 정지시키는 특별사면은 헌법에 규정된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다. 청와대도 “정부는 법과 원칙에 따라 특별사면을 검토하고 단행해 왔다”라며 특사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하지만 무절제한 사면은 사법부의 권위를 추락시키고 법치주의의 뿌리를 흔든다.
역대 대통령은 예외 없이 임기 말에 특별사면을 실시했다. 명분은 국민 화합과 경제 살리기였지만 권력형 비리를 저지른 측근이나 정치인, 대기업 총수들을 끼워 넣어 형평성 논란을 일으켰다. 김영삼 대통령은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을 1997년 말 특별사면했고, 김대중 대통령은 2002년 말 정태수 전 한보그룹 회장 등을 사면했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2007년 말 최도술 전 대통령총무비서관을 사면했다. 심지어 권력형 피고인들이 항소나 상고를 포기하고 형을 일찍 확정해 사면을 받는 ‘담합 사면’도 있었다. 유권무죄(有權無罪) 유전무죄(有錢無罪)라는 말은 그래서 나왔다.
생계형 범죄를 저질렀거나 사소한 벌점이 쌓여 살길이 막막해진 서민들을 사면해 주는 것은 분명 국민 화합이나 민생에 도움이 된다. 2009년 광복 64주년을 맞아 이 대통령이 단행한 사면은 바로 그런 사면이었다. 대상자 152만여 명 대부분이 자영업자 농민 어민 등 서민들이었고, 범죄 종류는 운전자 벌점이나 생계형 범죄가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서민 중 특별사면을 고대해 온 대상자도 많다.
이번에 청와대가 추진하는 특별사면은 그렇지 않다.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 등 이 대통령의 측근들이 대상으로 거론된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와 새누리당, 민주당은 한목소리로 “부정부패나 비리에 연루된 사람들에 대한 사면은 국민을 분노케 할 것”이라며 강한 반대 입장을 밝혔다.
이 대통령은 2007년 대선 공신인 최 전 위원장과 천 회장에게 부채의식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고령에다 건강도 좋지 않아 더 딱한 생각이 들지도 모른다. 하지만 청와대를 떠나는 대통령이 마음의 빚을 갚는 데 사면권을 이용해서는 안 된다. 두 사람은 대규모 개발사업과 세무조사 무마 청탁 등에 연루돼 지난해 말 2년여의 징역형에 수억∼수십억 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았다.
대통령이 측근이나 친인척을 사면하는 것은 되레 사면의 명분인 국민 통합을 해치고 새 정부에도 부담을 주는 일이다. 박 당선인은 후보 시절부터 친인척·측근의 부패, 대기업 지배주주·경영자의 중대 범죄에 대해 사면권 행사를 엄격히 제한하겠다고 공약했다. 이 대통령의 마지막 사면은 생계형 범죄에 국한하고 측근은 배제해야 옳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