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일은 폴란드 아우슈비츠 수용소가 1945년 소련군에 해방된 날을 기리는 세계 홀로코스트(대학살) 기념일이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는 하루 전인 26일 자신의 사이트에 올린 팟캐스트에서 “독일인은 나치의 각종 범죄, 제2차 세계대전 희생자들, 그리고 무엇보다도 홀로코스트에 대해 영원한 책임이 있다”라고 말했다. 그는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직시하고, 어떤 것도 숨기거나 억누르려고 해서는 안 된다. 인종차별주의와 반(反)유대주의가 다시 발붙일 수 없도록 개개인이 용기를 갖고 기여해야 한다는 점을 우리는 자손 대대로 분명히 말해야만 한다”라고 강조했다.
메르켈 총리 이전에도 독일 총리들은 2차 세계대전 때 나치가 인류에 저지른 범죄를 사죄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빌리 브란트 총리는 1970년 폴란드를 방문했을 때 수도 바르샤바에 있는 유대인 게토 지구 추모비 앞에서 무릎을 꿇었다. 다음 날 공항으로 가는 차 안에서 폴란드의 유제프 치란키에비치 총리는 브란트를 포옹했다.
나치의 반인륜 범죄에 영원한 책임이 있다고 한 메르켈 총리의 참회를 들으며 우리는 이웃 일본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독일과 일본은 2차 세계대전에서 각각 유대인 학살과 군 위안부 강제 동원이라는 범죄를 저질렀다. 하지만 두 나라 총리의 역사에 대한 태도는 극과 극이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군 위안부 강제 동원을 인정한 1993년 ‘고노(河野) 담화’의 수정을 검토하고 있다. 이에 대해 동북아 전문가인 제니퍼 린드 미국 다트머스대 교수는 26일 워싱턴포스트 기고문에서 “일본이 ‘전시 성노예 프로그램’을 완전히 인정하지 않는 것은 일본 장병들이 강간, 고문, 살해한 수십만 명의 소녀와 여성에 대한 또 다른 불의(不義)”라고 질타했다.
국제사회는 최근 ‘군대 위안부’라는 용어를 ‘성노예’라는 말로 바꿔 부르기 시작했다. 이 문제가 인류의 보편적 가치를 유린한 범죄라는 사실을 강조하기 위한 것이다. 이런 마당에 일본이 ‘고노 담화’에 손댄다면 국제사회의 비난을 자초하는 일이다.
일본은 “독일은 국가가 아니고 나치라는 정당의 잘못을 사과했지만 일본은 국가 차원의 잘못을 인정했기에 일본이 더 높은 단계의 사죄를 한 것”이라는 주장도 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사죄의 진정성과 그 후의 태도다. 독일은 기회가 있을 때마다 과거에 대해 사죄와 반성을 함으로써 피해국들과 화해하고 유럽연합(EU)의 중심 국가로 돌아왔다. 그런데 일본은 어떤가. 메르켈 총리의 발언에서 보듯이 잘못을 솔직히 인정하는 것도 국격(國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