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정부의 임기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 대통령의 국정운영에 대한 평가를 할 시점이라고 생각해 박재완 기획재정부 장관을 만났다. 그는 현 정부 인수위를 거쳐 청와대 정무수석 국정기획수석, 고용노동부 등 임기 5년을 이 대통령과 함께했다. 인터뷰는 23일 서울 집무실인 명동 은행연합회 사무실에서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은 ‘일 중독’이라던데 맞나.
“지금까지 정부 기업 대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일했는데 모셨던 분 가운데 가장 열심히 일하는 분이란 점 하나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웃음).”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나.
“청와대 수석 시절이었다. 토요일 새벽 5시에 물 먹으려고 일어났다가 휴대전화를 보니 간밤에 전화를 세 번이나 하신 것 아닌가.”
―대통령 전화는 발신자 이름에 뭐라고 뜨나.
“‘VIP입니다’라고 찍힌다. 요즘에는 ‘MBtious’(‘야망이 있는’이란 뜻의 ambitious와 동음)로 뜬다(웃음). 부속실장이 관리를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전화가 걸려온 게 오후 11시 반, 0시, 오전 1시였다. 토요일 대통령 행사가 많아 점심 후 통화가 이뤄졌는데 내용인즉슨 ‘간밤에 본 TV 시사토론에서 정부 정책을 반대하는 패널이 사실을 왜곡하는 발언을 했다’면서 ‘중요한 토론이 있으면 제대로 된 팩트를 미리 전달하라’는 지시였다. 어떤 날은 오전 6시 반에 ‘신문 의견광고에 정부 정책에 대한 오해가 담겨 있다’는 전화를 한 적도 있다. 그런 식으로 미디어를 통해 국민과 ‘암묵적인 소통’을 하고 있다고 느꼈다.”
MB정부, 두차례 경제위기 겪으며 수비 급급
―하지만 현 정부는 임기 내내 ‘불통’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할 말은 있지만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점에서 반성한다.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주라든지 녹색기후기금(GCF) 본부 유치를 따낼 때처럼 소통에서도 목숨 걸고 노력했어야 했는데….”
―박근혜 정부 역시 ‘불통 정부’가 될지 모른다는 우려가 나오는데….
“소통이란 게 상당히 기술적 기능적 측면이 크다. 새 정부가 출범하면 장차관들이 워크숍 등을 통해 소통의 노하우도 전하고 토론도 하며 가르치고 배우는 과정이 필요할 것 같다. 기자들 입장도 생각해 봐야 한다. 뉴스를 주지 않으면 상상력을 발휘하거나, 알아서 해석할 수밖에 없다. 메시지 기획이나 관리라는 게 상당히 치밀하게 이뤄져야 한다.”
이야기를 경제 쪽으로 돌렸다.
―MB는 경제대통령을 내세워 집권했지만 지난 5년간 연평균 경제성장률 3.2%는 역대 정권 중 최악이다.
“예기치 않은 글로벌 금융위기, 유로존 위기 등 세계경제 위기가 두 차례나 왔다. 지난 5년간 세계경제는 MB정부 전 10년 동안과 비교해 반 토막이 났다. 우리는 이번 불황이 오기전 5년간 성장률이 세계경제성장률 보다 0.4%포인트 낮았는데, 불황이 시작된 2008년부터 지난해까지 0.1%포인트 정도 앞질러서 불황이 오기 전후를 비교해 볼 때 0.5%포인트 정도 좋아졌다. 경제 규모도 11%(2011년 기준)나 커졌다. 중국과 인도를 빼면 우리 성장률이 1위다. 미국 일본 유럽은 마이너스다.”
―대기업 위주 수출드라이브로 덩치는 커졌을지 몰라도 서민 생활은 힘들었다.
“다른 나라와의 순위는 높아졌는데 (절대적인) 기록이 안 좋았기 때문에 서민 생활이 어려웠던 것이 사실이다. 과거 패턴을 보면 경제위기가 오기 전에는 유가가 급등하고, 위기가 지나가면 급락했다. 그런데 2010∼2011년부터는 유가가 100달러 밑으로 내려간 적이 없다. 곡물가도 마찬가지다. 우리나라는 에너지와 곡물 수입을 많이 하기 때문에 서민들의 물가고통이 심했다.”
―그런 외부요인 말고도 성장의 온기가 서민들에게까지 안 미쳤다는 게 문제 아닌가.
“실제로 기업은 부자가 됐지만 가계는 가난해졌다. 10여 년 전 외환위기 전에 비해 가계저축은 낮아졌지만 기업저축은 높아졌다. 자본이 노동으로 분배되는 ‘노동 분배율’도 조금씩 낮아졌다. 소득 증가율보다 임금 상승률이 낮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비정규직 임금 상승 비율이 여전히 낮다.”
복지지출 비중, 이미 OECD 평균 근접 가능성
―그래서 양극화가 커졌나.
“부익부 빈익빈을 나타내는 게 지니계수인데 우리의 경우 계속 악화되어 오다 이 정부 들어 주춤했다. 보수정부 부자정권이라 하지만 MB정부에서 분배가 개선됐다.”
―그런데 왜 서민들은 양극화가 커졌다고 생각할까.
“앞서 말한 에너지와 식량·곡물 가격 상승 외에 1인가구가 크게 늘어난 점도 원인이다. 지니계수는 가구 간 소득편차를 보는데 우리는 1인가구가 2010년 현재 414만2000가구로 10년 전보다 86.2%나 늘었다. 전체 가구에서 차지하는 비중도 23.9%나 된다. 1인가구는 대체로 가난하다. 이런 가구 구성 변화가 전체 소득 분배 변화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40%나 된다.”
―결과적으로, 현 정부의 과(過)는 무엇이었다고 생각하는가.
“멀리 내다보고 금융 서비스 분야 등에서 구조개혁을 해야 할 이슈들이 많았는데 발등에 불 끄느라 제대로 못했다. 또 취임 첫해 촛불집회가 있었고 바로 경제위기가 닥쳐 동력을 확보하기 힘들었다. 한마디로 수비에 급급했다. 이제 대외건전성도 많이 좋아졌고, 체질도 개선되었다. G2(미국, 중국)도 좋아지고 있고 유로존 국가들도 ‘뼈를 깎는’ 개혁을 통해 조금씩 경쟁력을 회복하고 있다. 새 정부는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을 수 있지 않겠나 싶다.”
경제정책을 총괄하고 있는 박 장관은 그동안 “복지 포퓰리즘에 맞서 싸우겠다”는 등 소신 발언으로 주목을 받았다. 선거 전 무상복지 요구가 거세지는 상황에서 재정정책 책임자로서 수용 불가 입장을 명확히 해 미국 유력 경제지 월스트리트저널(WSJ)이 사설에서 ‘한국 정치권의 포퓰리즘에 맞서는 장관’이라는 평을 하기도 했다.
―새 정부는 복지 확대 정책을 내걸고 있다. 현재 국내총생산(GDP) 내 복지비중이 10% 정도인데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20%에 비해 절반이므로 계속 늘려야 한다는 주장이 있다.
“복지비중만 갖고 보면 안 된다. 복지는 세금을 내는 능력 즉 ‘담세력’으로 결정된다. 우리의 경우 소득 수준을 감안하면 복지비용이 OECD 평균의 82% 정도다. 복지 지출은 노인인구 비중과 비례하는데 이를 감안하면 OECD 평균 72%에 달한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 적정경로를 가고 있는 중이다. 걱정되는 것은 지출속도가 너무 빠르다는 거다. 선진국들이 최근 복지 지출을 줄이고 있는 등 이런저런 요소를 감안하면 한국은 이미 OECD 평균에 근접해 있을 가능성이 높다.”
―양도 양이지만 내용이 중요한 것 아닌가.
“노는 사람이 일하는 사람보다 우대받으면 안 된다. 이미 기초생활수급자 사이에서 초과근무 야근 다 채우고도 공장에서 일하면 월 150만 원인데,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 게 낫다는 이야기들을 한다. 정말 필요한 사람에게 제대로 가야 한다. 집 있는 사람에게 주거 혜택을 주거나 아프지 않은 사람에게 병원 혜택을 주면 안 되는 것 아닌가. 복지는 계층마다 다른 욕구를 정확히 포착해야 하기 때문에 설계를 잘해야 한다. 한 번 주면 뺏기 어렵기 때문에 일단 시작할 때 지속가능한 정책인지도 따져야 한다.”
“누구나 빚을 지면 불안하다. 정부도 빚을 진다. 가계와 기업도 빚을 진다. 하지만 가계 기업 정부 중 가장 효율성이 떨어지는 게 정부다. 가계는 자기 돈이니까 온갖 계산을 다하면서 지출을 하지만 나랏돈은 주인의식이 없다 보니 책임이 없다. 대통령이 임기 중에 나랏돈을 펑펑 쓰면 좋겠다는 유혹에 빠질 수 있는 이유다. 따라서 정부의 빚은 가장 조심해야 한다. 우리의 경우 복지국가로 가는 길에 두 가지 위험요소가 있다. 첫째가 고령화다. 지금은 OECD 국가 중 두 번째로 젊은 나라지만 2050년에는 세 번째로 늙은 나라가 된다. 여기에 북한 변수까지 있다. 남북통일은 장기적으로는 도움이 되지만 단기적으로는 상당한 비용이 든다. 국제적으로는 GDP 대비 나랏빚 비율이 60%대가 바람직하다고 하지만 한국은 30%가 좋다. 현재 34%다. 더 낮춰야 한다.”
―가계부채 문제 등 여러 현안이 있다. 무엇이 가장 큰 걱정인가?
“주택거래 정상화다. 매매가 안 되니 전세금만 올랐다. 거래를 옥죄는 규제들인 분양가 상한제나 재건축 초과이익부담금 등을 빨리 국회와 새 정부에서 풀어야 한다. 깡통주택이나 하우스푸어에 대해 정부가 도와줄 거라는 심리가 팽배한데 빚에 대해서는 책임을 지도록 해야 한다. 정치적으로 봤을 때에는 구제해야겠지만 현재 국제 금융기구나 신용평가사, 투자은행(IB)들의 공통적 견해는 한국의 하우스푸어는 공적자금을 투입할 정도는 아니라는 거다.”
그는 “가계부채 문제도 과장된 측면이 있다. 다양한 시나리오로 스트레스 테스트(외부충격에 대한 금융사의 위기관리 능력 평가 프로그램)를 해보았는데 은행 위기 등 시스템 위기로 발전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저소득층이나 다중채무자들, 노인 취약계층에 대해서는 금리를 낮춰준다든지 하는 맞춤형 대책은 필요하지만 빚 탕감으로 도덕적 해이를 만연시킬까 우려된다”고도 했다.
기업들 몸사려… 설비투자 감소 가장 큰 걱정
―일본처럼 장기 불황으로 갈 가능성은….
“한국과 일본은 다르다. 우리는 2035년까지 가구 수가 계속 늘어나는 성장하는 경제다. 일본처럼 거품이 많이 낀 것도 아니다. 미국, 스페인, 아일랜드처럼 부동산 가격이 대폭락할 것이라는 것도 지나친 걱정이다.”
―그렇다면 비관적인 요소는 하나도 없나.
“기업의 투자 감소가 가장 걱정된다. 건설투자는 마이너스였다가 조금씩 회복되고 있고 내수도 지지부진하지만 마이너스는 아니다. 수출도 그런대로 회복되고 있다. 그런데 기업들의 설비투자가 크게 줄고 있다. 국내에서 더이상 수익모델이 없기 때문이다. 총선 대선 등 큰 정치 일정 때문에 불확실성이 커져 몸을 사린 측면도 크다. 기업 입장에서는 수익모델이 중요하다. 종합편성채널만 해도 미디어 산업의 새로운 돌파구다. 성공과 실패를 떠나 이처럼 투자가 되는 신수익 모델이 많지 않다. 무엇보다 기업과 기업가에 대해 존경까지는 아니더라도 인정은 해주었으면 한다. 그들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 수 있는 여건을 마련해야 한다.”
―종교인 과세 문제는 물 건너갔나.
“철회가 아니라 유예다. 중소 규모 종교시설에 종사하는 분들이 과세 인프라를 구축하도록 준비기간을 줘야 한다. 빠른 시일 안에 과세방안을 발표할 거다. 과세 시기는 협의할 것이다.”
―퇴임을 앞두고 소회가 있다면….
“경제 살리기, 선진 일류국가를 건설하려고 했지만 위기관리로 대체된 점이 아쉬웠다. 개인적으로는 영광된 시간이었지만 서민들 생각하면 돌아서는 발걸음이 가볍지는 않다.”
그는 퇴임후 대학(성균관대)으로 복귀할 예정이다. 4대강 사업이나 인사 문제 등에서 국민이 현 정부에 대해 갖는 아쉬움은 크다. 그러나 지난 정부를 부정하고 무조건 딛고 일어서는 게 새 정부의 역할이라는 고정관념을 깰 때가 됐다. 특히 경제 분야에서의 연속성 없는 개혁은 비용과 혼란을 가져올 것이다. 이제 우리는 정권교체 경험도 많아졌다. 경제정책에 관한 한 감정을 앞세워 흑백논리로 보지 말고 MB정부의 공과를 냉정하게 봐야 할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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