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부동산 시장의 규제 틀 바꿔 거래 살려내라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29일 03시 00분


부동산 시장의 침체는 국민의 살림살이와 직결된다. 국민이 보유한 자산 가운데 부동산이 70%를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인구 1000만여 명이 살고 있는 서울 지역에서 이달 들어 28일까지 거래된 아파트는 796건에 그쳤다. 지난해 같은 기간 거래량의 절반에 불과하다. 매수세가 사라지면서 서울의 아파트값은 추락하고 전세금은 껑충 뛰었다. 매물로 내놓은 집이 몇 년째 팔리지 않아 이사도 못 가고, 빚을 내서 집을 샀다가 대출금을 갚지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 딱한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떨어지는 부동산값에 위축돼 허리띠를 졸라매는 ‘역(逆)자산 효과’가 국내 경기를 더 냉각시키고 있다. 부동산 거래에 생계가 달려 있는 중개업소, 이삿짐센터, 인테리어, 가구 업계는 물론이고 건설 현장에서 일하는 일용 노동자, 레미콘 건자재 업계에도 불똥이 튀었다. 동아일보가 부동산중개·이사·인테리어 업계에 의뢰해 분석한 결과 지난 5년 사이 주택거래 위축으로 인해 관련 업계의 연간 소득이 9085억 원 감소한 것으로 나타났다. 건설 투자도 2010년 이후 3년 연속 줄어들어 경제성장률을 끌어내리고 있다. 부동산 시장이 장기간 침체를 거듭하는 데 따른 부작용이다.

서민과 중산층은 속이 타 들어가는데 여야 정치권은 한가롭기 짝이 없다. 지난해 대통령선거 때 여야의 대통령 후보들은 연말로 끝나는 부동산 취득세 감면 혜택을 연장하겠다고 공약했지만 약속은 지켜지지 않았고 결국 해를 넘겼다. 새해 들어 주택 거래가 뚝 끊기자 여야가 뒤늦게 “취득세 감면을 연장하겠다”고 큰소리쳤으나 임시국회는 이달에도 열리지 못했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업무 보고에서 “비정상적인 주택시장을 정상화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해달라”고 주문했다. 하지만 부동산 정책의 밑그림이 보이지 않아 시장의 불안감이 커지고 있다.

한국 경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에도 2%대 성장에 그칠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이 나오고 있다. 지금처럼 집값 하락이 지속되면 부동산발(發) 한파가 서민경제 전반으로 확산될 것이다. 가계 부채 문제가 심각하기는 하지만 빚내서 집을 사는 투기를 당장 걱정할 단계도 아니다. 과거 정부처럼 투기 억제에 초점을 맞추고 규제의 고삐를 잡았다 폈다 하며 뒷북 대책을 남발해서는 꽁꽁 언 부동산 시장에 온기를 불어넣기 어렵다.

여야 정치권은 더 늦기 전에 부동산 정책의 큰 틀을 ‘규제’에서 ‘거래 정상화’로 바꿔야 한다. 그러자면 부동산 수요와 공급, 거래를 억누르는 ‘신발 속 돌멩이’부터 없애야 한다. 주택 실수요자들의 눈높이에 맞춰 규제를 푸는 일이 시급하다. 취득세 감면 조치는 2006년부터 연장을 거듭하는 땜질식으로 이뤄지고 있다. 차제에 취득세를 현실적으로 조정해 주택 구매자들이 집을 거래할 때 문턱을 대폭 낮춰주는 근본적인 처방이 필요하다. 젊은 세대들이 생애 처음으로 주택을 구입할 경우 취득세를 경감해주거나 금융 지원을 늘리는 방안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현재 부동산 거래세와 보유세 비중은 7 대 3으로 거래세 비중이 다른 나라에 비해 지나치게 높다. 거래세를 낮추고 보유세를 점진적으로 올려 부동산 거래에 물꼬를 터줘야 한다. 1, 2인 가구가 많아지는 추세를 고려해 일본처럼 임대주택에 대한 세제 혜택과 금융 지원을 통해 민간 임대주택 시장을 키우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다주택 보유자들에 대한 양도세 중과 같은 규제를 풀어 이들을 부동산 시장에서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주체로 키우는 대책을 도입할 만하다.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훼손하지 않는 범위에서 총부채상환비율(DTI)과 같은 대출규제를 탄력적으로 적용해 부동산 시장에 숨통을 틔우는 균형 감각을 발휘할 필요가 있다.

부동산은 심리학이다. 자산 가격이 오르면 덩달아 수요가 늘고, 떨어지면 수요가 급감하는 것이 부동산 시장의 이치다. 한국 경제가 일본의 장기 불황 같은 만성 고질병이 아니라 일시적인 감기를 앓고 있다는 믿음을 줄 수 있어야 부동산 시장이 원기를 회복할 수 있다. 새 정부는 꽁꽁 얼어붙은 주택 거래를 살려내 국민의 민생 불편을 덜어줘야 한다.
#부동산#경제#취득세 감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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