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 포인트제도는 백화점에서 물건을 사면 일정 비율을 포인트로 적립해 나중에 현금처럼 쓸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항공사의 마일리지 개념을 백화점 마케팅에 도입한 것이다. ‘티끌 모아 태산’이라고 포인트를 차곡차곡 쌓아 물건으로 바꾸면 공짜로 얻은 듯한 기분이 든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후원자였던 박연차 태광실업 회장은 뇌물로 백화점 상품권을 건네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편지봉투 2개에는 50만 원짜리 상품권 200장(1억 원)을 담을 수 있다. 박 회장은 노무현 정부 시절인 2004년 12월 서울의 S호텔 식당에서 박정규 대통령민정수석비서관에게 백화점 상품권 1억 원어치를 건넸다. 박 수석은 술김에 모르고 상품권을 받았다가 부인을 통해 박 회장에게 돌려주려고 했지만 차일피일하다가 그대로 갖고 있었다고 한다. 그의 부인은 남편이 민정수석에서 물러난 지 2년이 훨씬 지난 2007년 추석 때 박 수석이 혼자 일본여행을 떠나자 ‘홧김에’ 이 상품권으로 4400만 원짜리 명품 시계와 4500만 원짜리 반지를 샀다. 박 수석은 뇌물수수죄로 구속돼 징역 3년 6개월에 추징금 9400만 원을 선고 받고 형기를 절반 이상 복역한 후에야 가석방으로 풀려날 수 있었다.
▷노무현 대통령의 측근으로 ‘좌(左)희정’으로 불리던 안희정 충남도지사도 민주당 최고위원 시절 박 회장에게 상품권 5000만 원어치를 받아 썼다가 덜미를 잡혔다. 이들의 상품권 뇌물이 들통 난 것은 백화점 포인트제도 때문이었다. 박 회장은 익명성이 보장되는 백화점 상품권을 줬지만 이들이 상품권을 쓰면서 포인트를 적립해 근거가 남게 된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대통령총무수석비서관을 지낸 정상문 씨도 2005년 1월 박 회장에게서 백화점 상품권 1억 원어치를 받았다. 2007년 말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에서 S해운을 수사하면서 자신이 연루되자 압수수색에 걸릴까 제 발이 저려 상품권을 모두 파쇄기에 갈아 없애 버렸다고 한다.
▷의사들을 상대로 자기 회사 약품을 써 달라고 로비를 벌여온 CJ제일제당은 흔적을 남기지 않으려고 법인카드를 의사들에게 건네는 방법을 이용했다. 하지만 이 카드를 백화점에서 쓴 의사들이 자기 명의로 포인트를 적립하는 바람에 뇌물 수수 사실이 드러났다. 뇌물을 준 쪽은 법망을 피하려고 머리를 굴려 현금이나 수표 대신 상품권과 법인카드를 주었지만 뇌물을 받은 쪽은 남의 돈으로 포인트까지 쌓으려다 패가망신(敗家亡身)하고 말았다. 백화점이 단골 고객을 확보하기 위해 만든 포인트제도가 뇌물을 챙긴 사람들에게 ‘꼬리표’를 달아준 셈이다. 제약회사에서 리베이트를 받아가며 환자와 국민건강보험공단에 손실을 끼친 의사들이 카드 뇌물에 딸린 ‘푼돈’까지 탐냈으니 어찌 뒤탈이 없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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