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얀마 민주화운동의 상징’ ‘철의 난초’ ‘여성 만델라’. 그제 처음으로 한국을 찾은 미얀마의 아웅산 수치(68)에게 붙는 훈장들이다. 지난해 그의 일대기를 그린 영화 ‘더 레이디(The lady)’가 개봉된 뒤에는 ‘더 레이디’라는 호칭이 새로 생겼다. 1988년부터 24년 동안 군부독재정권에 의해 가택연금을 당하고, 노벨 평화상 수상연설을 21년이 지나서야 할 수밖에 없었던 비운의 인물. 그러나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나 미얀마 민주화의 상징으로 솟아오른 여성. 아무리 별명을 잘 지어도 수치의 파란만장한 삶을 담아내기엔 부족하다.
▷한국에 살고 있는 미얀마 국민은 그제 인천공항에서 수치를 만나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 한국 거주 미얀마인들은 크게 세 그룹으로 나눌 수 있다. 군부독재를 피해 탈출한 난민이거나 가족을 먹여 살리기 위해 입국한 가난한 이주노동자, 아니면 유학생이다. 어렵게 살고 있는 미얀마인들에게 세계가 우러러보는 수치의 방문이 얼마나 큰 격려가 될지는 상상하기 어렵지 않다. 수치가 이끌고 있는 ‘버마(미얀마)민주주의민족동맹(NLD)’의 내툰나잉 한국지부 대표는 “역사적인 사건”이라며 기뻐했다.
▷1988년 미얀마 총선은 NLD의 압승이었다. 군부독재가 끝나고 민주화가 오는 듯했다. 그러나 군부가 총선 결과를 무효화하면서 나락에 빠졌다. 풍부한 자원을 갖고 있으면서도 국제사회의 각종 제재로 최빈국이 됐다. 2011년 테인 세인 대통령이 취임하면서 변화의 숨통이 트였다. 가택연금에서 풀려난 수치는 지난해 보궐선거에서 국회의원이 됐다. 그의 한국 방문도 미얀마 정부의 탈(脫)고립 정책 덕분이다. 어제 이명박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을 만난 수치는 오늘 광주로 내려가 9년간 미뤘던 ‘2004년 광주인권상’ 수상 연설을 한다.
▷수치의 활약에도 불구하고 미얀마 민주투사들이 전망하는 미래는 밝지 않다. 군부독재를 피해 1994년 한국에 온 마웅저 씨(44)는 “아직은 갈 길이 멀다”고 했다. 수치는 지난해 11월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을 만나 “미얀마 정부의 정치개혁이 ‘성공의 신기루’가 될 위험이 있다”며 성급한 기대를 경계했다. 마웅저 씨는 2008년 제정한 헌법을 개정해야 진정한 민주화가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미얀마 헌법은 국회의원의 25%를 군인으로 채우도록 규정하고 있다. 야당과 민주투사들은 영국인과 결혼한 수치를 겨냥해 외국인과 관련된 사람을 대통령 후보에서 배제한 조항도 없애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래도 미얀마는 아무리 심한 독재정권이라도 언젠가는 도도한 민주화의 물결에 꺾이고 말 것이라는 확신을 갖게 한다. 북한에는 언제 수치 같은 반독재 민주화투사가 나올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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