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가 자진 사퇴한 이후 국민의 시선은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게 쏠리고 있다. 헌재소장은 국회의 임명동의 대상이다. 국회 인사청문특위의 보고서 채택이 무산된 상황에서 국회의장이 직권으로 동의안을 본회의에 상정하는 방법이 남아 있지만 가능성은 매우 낮다.
전임 이강국 소장은 21일로 임기를 마쳐 헌재소장은 공백상태다. 헌재재판관 한두 명 차이로 다수의견이 갈릴 수 있는 사건은 결정을 미뤄야 한다. 청와대에서는 “이 후보자 인선은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의중이 강하게 반영된 만큼 당선인이 결단해야 한다”는 말이 나온다. 그러나 청와대와 인수위가 서로 책임을 미루면서 사태를 끌고 갈 일이 아니다. 국무총리 인선만 급하게 생각하고 헌재소장의 공백사태를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것은 헌법 경시다.
이 후보자는 부인하고 있지만 국회 청문 과정에서 제기된 의혹만도 특정업무경비의 사적(私的) 사용, 위장 전입, 가족동반 해외출장 등 열 가지가 넘는다. 고위공직자로서의 윤리의식이 빈약하다는 비판이 나올 수밖에 없다. 이 후보자에 대한 의혹은 헌재 내부에서 새나오지 않으면 바깥에서는 알기 힘든 것이 많았다. 헌재 안에서도 신망을 얻지 못했다는 의미다. 이미 권위를 상실한 이 후보자는 헌재소장이 되더라도 국민의 존경과 신뢰 속에서 헌법기관을 이끌기 힘들다.
새누리당이 이 후보자를 쉽게 포기하지 않았던 것은 박근혜 정부의 첫 총리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순조롭게 통과하도록 협상카드로 쓰려는 정치적 의도도 있었다. 김 국무총리 후보자가 사퇴하면서 “이 후보자를 더 지킬 이유가 없다”는 분위기가 감지된다. 이 시점에서 이 후보자 스스로 결단하는 게 옳다. 하루라도 빨리 사퇴하는 게 헌재의 정상적인 작동을 위하고 새 정부의 부담을 덜어주는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