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장택동]少數의 비극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31일 03시 00분


장택동 국제부 차장
장택동 국제부 차장
25일 태국 남부 푸껫 섬 인근 해상에서 표류하고 있던 작은 배 한 척이 해군에 발견했다. 배에는 어린이 28명을 포함한 96명의 로힝야족이 타고 있었다. 이들은 이달 1일 미얀마 라카인 주를 떠나 말레이시아를 향하는 중이었다. 25일간의 항해 동안 먹은 것은 물과 생쌀뿐이다. 이들은 “미얀마 정부가 집과 재산을 모두 빼앗아 버려서 어쩔 수 없이 밀항하게 됐다”고 토로했다고 방콕포스트가 전했다.

세계에서 가장 박해받는 민족 중 하나인 로힝야족의 비극이 계속되고 있다. 유엔난민기구(UNHCR)에 따르면 지난해 1만3000여 명의 로힝야족이 미얀마에서 탈출했고, 이 가운데 적어도 485명이 탈출 도중 목숨을 잃었다. 올해 들어서도 태국 해상에서 로힝야족을 태운 밀항선들이 잇따라 발견돼 약 1700명이 임시 수용돼 있다.

미얀마에는 약 80만 명의 로힝야족이 살고 있고, 주로 라카인 주에 거주한다. 하지만 미얀마 정부는 이들을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는다. 19세기 미얀마를 지배했던 영국이 방글라데시에서 데려온 노동자들의 후손이므로 ‘불법체류자’라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미얀마의 로힝야족은 ‘유령’이나 다름없다. 호적도 없고 일자리를 가질 수도, 교육을 받을 수도 없다.

로힝야족이 냉대를 받는 주된 이유는 미얀마 국민의 다수(多數)와 민족, 종교가 다르기 때문이다. 미얀마 인구의 75%를 차지하는 버마족(미얀마족)은 대부분 불교를 믿는 반면 방글라데시에 뿌리를 둔 로힝야족은 이슬람을 믿는다. 지난해 6월과 10월 라카인 주에서 주민과 로힝야족의 대대적 충돌로 약 200명이 숨진 뒤 로힝야족에 대한 박해는 더욱 심해지고 있다.

이런 절박한 상황을 이용한 범죄까지 기승을 부린다. 인신매매꾼들은 ‘다른 나라로 보내 주겠다’고 로힝야족을 꾀어낸 뒤 남아 있는 가족에게 ‘몸값’을 요구하고, 돈을 내지 않으면 고기잡이배 등에 노예로 팔아넘긴다고 UNHCR는 설명했다.

로힝야족을 받아줄 나라도 없다. 미얀마의 로힝야족이 대규모로 넘어올 것을 우려하는 방글라데시는 살길을 찾아온 로힝야족을 “미얀마로 돌아가라”며 내쫓고 있다. 약 8만 명의 로힝야족을 받아준 이슬람국가 말레이시아도 “더는 어렵다”며 손을 내젓고 있다. 오도 가도 못하게 된 로힝야족은 바다를 떠도는 ‘보트 피플’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국제사회는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않는다. 강대국들은 전략적 요충지이자 자원 부국인 미얀마를 자기편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이런 마당에 굳이 미얀마 정부를 불편하게 할 문제를 부각시킬 이유가 없다. 국제정치의 비정한 현실이다.

민족이나 종교 등이 다르다는 이유로 소수가 다수에게서 차별을 당하고 고통 받는 비극은 세계 곳곳에서 벌이지고 있다. 정도의 차이는 있겠지만 한국에서도 벌어질 수 있는 일이다. 한국인의 차가운 시선에 숨죽여 울고 있는 외국인 노동자, 다문화가족은 없는지 다시 한번 돌아볼 일이다.

장택동 국제부 차장 will71@donga.com
#로힝야족#미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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