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조수진]법-원칙 무시한 MB사면… 朴당선인의 5년後는?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1월 31일 03시 00분


조수진 정치부 기자
조수진 정치부 기자
이명박 대통령이 기어코 비리를 저지른 측근들에게 면죄부를 줬다. 이 대통령은 29일 국무회의에서 사면안을 심의·의결하면서 “정부 출범 시 ‘임기 중 발생한 권력형 비리 사면은 하지 않겠다’고 했던 원칙에 입각해 실시했다. 법과 원칙을 따랐다”고 말했다. 그러나 사면의 내용을 들여다보면 무엇이 법과 원칙이란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다.

첫째, 사면에 대한 이 대통령의 말이 바뀌었다. 이 대통령은 취임 첫해인 2008년 8·15특사를 단행하면서 “임기 중 발생하는 비리는 단호히 처리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4년 반 뒤 “임기 중 비리”란 언급은 “임기 중 권력형 비리”로 슬쩍 바뀌었다. ‘사면 불가 대상자’를 줄이기 위한 장치겠지만 이 경우 ‘권력형 비리’에 대한 정의가 궁금해진다. 가령 사면된 천신일 세중나모여행 회장은 현 정권 출범 뒤인 2010년 8월까지 기업체에서 수십억 원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됐다. ‘현직 대통령의 최측근’이란 배경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천 회장 사례가 권력형 비리가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 권력형 비리란 것일까.

둘째, ‘재임 중’이란 용어도 혼란스럽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 김효재 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이 연루된 한나라당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은 2008년 7월 발생했다. 분명히 이 대통령 임기 내 벌어진 사건이다. 친이(친이명박)계인 장광근 전 한나라당 사무총장도 현 정부 임기 중인 2010년 8월까지 불법 후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됐다.

셋째, 조현준 ㈜효성 섬유 PG장(사장)이 사면된 것 역시 논란거리다. 조 사장은 이 대통령 셋째 딸 남편(조현범 한국타이어 사장)의 사촌이다. 법무부는 사면 명단을 발표하면서 “대통령의 주요 친인척은 제외했다”고 했지만 굳이 ‘대통령의 주요 친인척’을 운운한 것은 친인척 사면 논란을 차단하기 위한 것이 아닐까. 아무리 인척이 ‘혈족의 배우자, 배우자의 혈족, 배우자의 혈족의 배우자’(민법)로 규정돼 있다 해도 조 사장을 대통령 사돈으로 보지 않을 국민이 몇이나 될까.

넷째, 규정도 무력화됐다. 형기의 3분의 2를 채워야 사면 대상자가 되는 것과는 달리 최시중 전 방송통신위원장과 천 회장은 고작 31%(징역 2년 6개월 확정), 47%(징역 2년 확정)만 각각 채우고 수감 생활에서 벗어났다.

다섯째, 기준도 찾아보기 어렵다. 장 전 사무총장과 김희선 전 열린우리당 의원은 지역구(서울 동대문갑)가 같고, 비슷한 시기에 기소됐지만 장 전 총장만 사면됐다. 3년 뒤 총선에서 장 전 의원은 출마할 수 있지만 김 전 의원은 새 정부가 사면하지 않을 경우 발이 묶인다. ‘친이=사면, 다른 당=배제’가 기준이라면 기준일 것이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이 대통령을 통해 무엇이 법과 원칙인지를 분명하게 재정립할 필요가 있다. 이 대통령이 법과 원칙을 들이대며 사면을 강행한 날, 박 당선인이 “법과 원칙을 바로 세울 적임자”라고 설명하며 지명한 김용준 전 국무총리 후보자가 여러 위법 시비로 낙마하면서 박 당선인이 강조해온 법과 원칙은 상당한 상처를 입었다. 더구나 ‘작은 청와대’ 구상은 이미 ‘큰 청와대’로 선회했고, “경호처는 손을 대지 않는다”(유민봉 인수위 국정기획분과 간사)던 공언은 장관급 경호실장 신설로 빈말(空言·공언)이 된 터다. 말과 행동이 다르면 신뢰를 주지 못한다. 법과 원칙도 설 수가 없다.

조수진 정치부 기자 jin0619@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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