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도서정가제와 동네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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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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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5년 서울 탑골공원 근처에 작은 서점 ‘마리서사’가 문을 열었다. 이곳은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곳이 아니라 김기림 김광균 김수영 등 당대의 문인들이 즐겨 드나들던 정신적 안식처였다. 책방의 주인은 ‘목마와 숙녀’ ‘세월이 가면’으로 유명한 시인 박인환. 서점은 3년도 버티지 못하고 폐업했으나 훗날 시인은 이렇게 회고했다. “아무 미련 없다. 그때 드나들던 친구들을 사귄 것만으로 다행으로 여긴다.”

▷온라인 서점의 영향력이 날로 커지면서 우리 주변에서 서점들이 하나둘씩 모습을 감춘 지 오래다. 1999년 국내 최초의 인터넷 서점 ‘예스24’가 등장했을 당시 5000개를 헤아렸던 전국의 서점 수는 2011년 1752곳으로 줄어들었다. 중소형 책방들이 몰락한 이유의 하나는 온라인 서점이 주도하는 가격 할인 경쟁을 배겨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동네 서점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받을 때 정가보다 25∼30% 싸게 받지만 인터넷 서점은 대량 구매 덕분에 잘 팔릴 만한 책들만 골라 훨씬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다. 이를 기반으로 온라인 서점은 오프라인 서점보다 더 싼 가격으로 책을 팔면서 급성장했다. 책값 할인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동네 서점들이 무너지고 온라인 서점들의 수익도 악화됐다.

▷출판 시장의 상황이 극도로 열악해지자 도서정가제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힘을 얻고 있다. 그러나 인터넷 서점 알라딘은 지난달 9일 도서정가제를 강화하는 것을 골자로 국회에 발의된 출판문화진흥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서명운동을 주도해 왔다. 이 때문에 출판계와 마찰을 빚었던 알라딘이 그제 백기를 들었다. 출판사들이 똘똘 뭉쳐 알라딘에 책 공급을 중단하자 알라딘 측은 출판 관련 업계와 논의해 문제를 풀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출판서점 업계는 도서정가제에 관한 의견을 모아서 상생협력 방안을 논의하는 기구를 다음 주 발족할 계획이다.

▷책은 정신적 양식을 담는 그릇이자 지식문화의 근간이다. 이런 특수성 때문에 많은 나라가 도서정가제를 시행하고 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독일 스페인 이탈리아 등 10여 개국이 도서정가제를 시행한다. 프랑스의 경우 책 정가의 5% 이상 할인 판매를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무리한 책값 할인 경쟁은 책방의 몰락뿐 아니라 출판의 다양성을 위협한다. 할인을 감안한 가격 거품이 형성되면서 소비자도 피해를 보고 있다. 도서정가제를 둘러싼 견해차가 하루빨리 좁혀져 작은 서점들이 살아나고 책 읽는 문화도 활성화되기를 기대한다. 길을 걷다 잠시 들어가 이 책 저 책 뒤지다 우연히 읽고 싶은 책을 발견하는 재미를 느꼈던 책방은 거리의 도서관이다. 이들이 다 사라진 거리는 너무 삭막하지 않은가.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도서정가제#동네 책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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