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그제 “인재를 뽑아서 써야 하는데 인사청문회 과정이 신상 털기 식으로 간다면 과연 누가 나서겠느냐”고 우려를 표명했다. 어제는 “시시콜콜한 것까지 검증하면 처음부터 후보자를 완전히 지리멸렬시켜 버릴 수 있다”면서 업무 능력은 공개 검증하되 신상 문제는 비공개 검증하는 쪽으로 인사청문회 제도를 개선할 필요가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특정 사안을 집어서 말한 게 아니라 인사청문회에 대한 일반적인 소회를 밝힌 것이라지만 인사 실패의 뒤끝에 나온 발언이라 관심을 끈다. 듣기에 따라서는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의 자진 사퇴나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 보고서 채택 무산을 언론의 ‘신상 털기 검증’ 탓으로 돌리는 듯한 인상을 준다.
김 후보자가 사퇴할 수밖에 없게 되고, 이 후보자가 인사청문회를 통과하지 못한 것은 사전(事前) 검증이 소홀했기 때문이다. 특히 김 후보자의 결정적 하자는 부동산 투기와 두 아들의 병역면제 의혹이었다. 인사청문회 제도 도입 이후 수도 없이 나왔던 문제인데도 사전에 걸러지지 않았다. 김 후보자가 대법관과 헌재소장을 지낸 터라 이미 인사청문 절차를 거쳤다고 착각했을 것이라는 말까지 나온다.
물론 지금의 인사청문회 방식에도 문제는 있다. 업무 수행 능력이나 자질 검증보다는 지나치게 도덕성 검증에 치우친 것이 사실이다. 대부분의 질의 시간을 의혹 제기에 할애하고 정작 검증 대상자에게는 해명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망신 주기로 끝내는 국회의원도 적지 않다. 인사청문회 제도가 도입된 지 13년이나 흘렀으니 원래 취지를 살리면서도 좀 더 효율적인 청문회가 되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
미국은 후보자를 물색해 지명하기까지 백악관 인사국, 연방수사국(FBI), 국세청, 공직자윤리위원회 등의 기관이 무려 223개 항목에 대한 사전 검증을 한다. 이웃들의 평판까지 꼼꼼히 청취한다. 언론도 자체적으로 치밀하게 검증한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보자가 인사청문회에 서니 의회에서는 업무 수행에 필요한 자질과 능력 검증에 주력할 수 있는 것이다. 이명박 정부도 수차례 인사 실패를 거듭한 뒤 미국의 사례를 본떠 200여 항목의 사전 검증 리스트를 마련했다. 박 당선인이 이것만 제대로 활용했더라도 김 후보자의 도중하차 같은 낭패는 겪지 않았을 것이다.
박 당선인이 총리 인선에서 또다시 실패한다면 새 정부 출범에 심각한 차질을 빚을 것이다. 박 당선인에 대한 국민의 신뢰에도 금이 갈 수 있다. 가능한 한 여러 사람의 의견을 듣고 공적 기구를 활용해 인선과 검증을 해야 김 후보자의 낙마 같은 사태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 박 당선인이 인재의 풀도 더 넓히고, 청와대가 보유하고 있는 인사파일도 충분히 활용하길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