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이종훈]성 안에 갇힌 다보스 포럼의 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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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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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종훈 파리 특파원
이종훈 파리 특파원
해발 1500m가 넘는 곳에 위치한 인구 1만 명의 작은 마을 스위스 다보스는 유럽 스키 애호가들이 몰려드는 겨울 휴양지다. 독일 현대문학의 거장 토마스 만의 대표작 ‘마(魔)의 산’에서 주 무대로 등장한 곳이다. 스키어들이 스키를 든 채 시내버스를 타고 다니고 겨울에는 스키가 교통수단이 될 만큼 소박하고 한적한 시골이다.

이런 다보스가 매년 1월 말 지구촌 권력자의 모임인 세계경제포럼(WEF) 연차총회로 한바탕 소동을 치른다. 그러나 43회째인 올 다보스 포럼(1월 23∼27일)은 ‘그들만의 미래’를 진지하게 고민해 봐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이번 포럼은 ‘탄력적 역동성(resilient dynamism)’이라는 난해한 주제어로 관심을 끄는 듯했지만 단골손님이던 반(反)세계화 시위대가 완전히 자취를 감춘 데서 알 수 있듯 과거 어느 때보다 주목받지 못했다.

유럽 재정 위기와 아랍의 봄이라는 세계사적 사건을 예측하지 못했던 원죄 때문일까. 온갖 가십과 사적인 외교 현장의 재미없는 얘기까지 쏟아냈던 세계 언론들은 언제 그랬냐는 듯 차분한 관찰자로 돌아섰다. 르피가로 등 유럽의 유력지조차 하루에 기껏 한 꼭지의 기사를 내는 데 그쳤다. 그것도 포럼 개막 직전 2017년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 계획을 발표한 데이비드 캐머런 영국 총리의 행보와 관련된 것이었다.

중국에 대한 다보스의 갑작스러운 무관심은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233개 세션 중 중국을 제목으로 다룬 세션은 단 2개였다. 그것도 참여율이 가장 떨어지는 개막 첫날과 대다수 참석자가 다보스를 떠날 때인 폐막 전날 각각 한 개뿐이었다.

중국 경제의 의미가 줄었나. 재정 위기에 처한 유럽의 지도자들이 제발 비행기 한 대라도 더 사달라고 애원했던 나라가 어딘가. 2008년 경제위기 때 중국의 경기 부양책을 목 놓아 기다렸던 이들이 바로 다보스 포럼의 주축 멤버 아닌가. 게다가 최근 시진핑(習近平) 시대를 맞은 중국은 언론과 사상의 자유에 대한 국민의 내재된 욕구가 분출되는 심상치 않는 시대사적 갈등을 노정하고 있는 터다.

다보스 포럼이 그간 장식물 정도로 치부해 온 여성 참석자에게 보여준 관심은 그나마 점수를 줄 만하다. 여성이 대표단에 포함될 경우 초청장을 4장에서 5장으로 확대한 2011년 이후 여성의 참석 비율은 18%까지 올라갔다.

과거 재계의 여성 지도자들이 여성 문제 포럼에 관객으로 초대됐던 것과 달리 올해는 머리사 메이어 야후 최고경영자,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 등이 경제 분야 세션에서 정보기술(IT) 산업의 미래를 연설하고 토론을 주도했다. 쇼핑이나 눈썰매 타기 등 여흥으로 소일했던 여성 배우자들은 ‘코엘류 강독회’ 같은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하지만 이 포럼이 더이상 ‘가진 자들의 친분 쌓기 클럽’으로 전락하지 않으려면 이제는 달라져야 한다.

‘영양가 없는’ 세션만 주로 서방 국가 소속 언론인 232명에게 공개하고 중요한 비즈니스 ‘뒷거래’는 비공개 회의장에서 몰래 한다는 비판을 언제까지 무시할 건가. 미국 영국 스위스 독일 등 7개국 참석자로만 전체의 60%가 넘는 폐쇄성을 언제까지 고수할 것인가. 참석자의 범위와 언론인의 취재 참여를 대폭 늘리고 토론 주제도 문화, 체육, 교육 등으로 확대하는 게 급선무다. 다보스 내 모든 숙박 시설의 가격과 예약까지 독점하는 편협한 사고방식을 고수하는 한 다보스 포럼의 미래는 없다.

이종훈 파리 특파원 taylor5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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