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신연수]30년 만에 부활한 ‘저축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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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2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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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월 24일자 일간신문에는 박정희 대통령이 ‘구두닦이 저축왕’에게 금일봉을 하사했다는 기사가 큼지막하게 실렸다. 전북 완주 출신으로 10년 전 상경한 김광천 씨(당시 27세)가 서울 명동에서 점심을 굶어가며 구두를 닦아 115만 원을 모았다는 내용이었다. 당시 공무원 월급이 1만∼2만 원이었으니 엄청난 저축액이다. 박 대통령은 그해 연두 기자회견에서 근면과 저축의 본보기로 김 씨를 칭찬하고 며칠 뒤 금일봉을 줬다. 소아마비로 다리가 불편한 그를 위해 경찰병원 종신진료권도 선물했다.

▷나라가 찢어지게 가난해 변변한 자본이 없었던 1960, 70년대에는 정부가 나서서 저축을 독려했다. 정부가 금융기관에 저축 목표액을 정해주고 은행별, 지역별로 할당했다. 목표액을 못 채운 은행이 사채시장에서 10%씩 커미션을 주고 예금을 유치해 당국의 제재를 받는 일도 있었다. 초등학생들은 의무적으로 통장을 하나씩 가졌다. 일본 영국 프랑스 등 외국에서 수억 달러씩 차관을 들여와 공장을 짓고 도로를 건설하던 시절이니 그렇게라도 자본을 확보할 수밖에 없었다. 1976년 시작된 근로자재산형성저축(재형저축)은 금리가 한때 20∼30%나 됐다. 저금리 시대에는 상상할 수 없는 이자다. 1990년대에는 신규 예금자를 추첨해 동남아여행권 자동차 휴대전화 등 경품을 주는 일도 있었다.

▷과거 세계 최고 수준을 기록했던 우리나라 저축률이 밑바닥으로 떨어졌다. 총저축률은 지난해 3분기 30.4%를 기록하면서 1982년 3분기(27.9%) 이래 가장 낮아졌다. 가계 저축을 가처분소득으로 나눈 가계 저축률은 1990년대 후반까지 20%를 웃돌았으나 2011년에는 2.7%로 추락해 뉴질랜드(2.3%) 일본(2.9%)과 함께 세계 최하위권으로 떨어졌다. 빚이 많은 가정이 늘어난 데다 금리가 낮아 돈 있는 사람도 저축을 꺼리기 때문이다. 저축률이 떨어지면 투자자금을 조달하기 어려워져 경제성장에 악영향을 미친다. 낮은 저축률은 나라 경제에 적신호다.

▷위기감을 느낀 금융권이 저축 캠페인에 나선다는 소식이다. 금융권이 공동으로 저축 캠페인을 벌이는 것은 1980년대 이후 30여 년 만이다. 은행연합회 등은 8, 9일 서울역과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등에서 저축상품 안내문을 나눠주고 은행이나 보험회사 창구에서 지속적으로 상품 홍보를 할 계획이다. 18년 만에 부활하는 재형저축, 세금우대 저축, 농어가 목돈 마련 저축 등 다양한 상품이 마련됐다. 역대 저축왕들은 돈을 쓰기 전에 저축부터 하고, 수입의 70∼80%를 저축하며, 기부까지 했다. 이번 기회에 저축통장 하나씩 만드는 것도 100세 시대를 살아가는 삶의 지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신연수 논설위원 ysshin@donga.com
#저축#저금리#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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