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우주를 향해 로켓을 쏘아 올릴 만큼 위대하지만 자기 등의 가려움을 자기 손으로 긁지 못하는 슬픈 한계를 지닌 존재이다.
한국최초의 우주발사체 나로호를 쏘아 올린 지 1주일이 넘었다. 지금 우리의 별 나로호는 어느 하늘을 돌며 꿈같은 타원형을 그리고 있을까.
엄청난 돈을 쏟아 부었다고 하지만 우주 강국 진입에 성공하는 첫 신호로서의 나로호 소식은 여러 의미에서 가슴을 설레게 한다. 상당 부분 다른 나라 기술에 의존한 것이라고 해도 첨단 우주 과학 시대를 사는 실감과 국력을 피부로 느낄 수 있는 쾌거였다.
그런데 나로호 소식을 비웃기라도 하듯이 한국 남성들의 성매수 관광이 아시아에서 1위라는 보도가 바로 눈에 들어온다. 더구나 그 보도가 나간 후에 비판이 일자 뭐가 잘못이냐 되물으며 인터넷 카페 회원이 늘었다는 기사도 연이어 나와 놀랍기 그지없다.
어쩌다가 한국인이 이 지경이 되었을까.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자살률 1위라는 통계와 함께 오늘날 한국인의 정신의 황폐함을 한눈에 읽을 수 있는 것이라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경제의 활성화나 빠른 정보 사회도 좋지만 건강한 문화 사회로의 가치 전환이 절실하게 필요한 시점이 아닌가 싶다.
성폭행, 성범죄, 성매매 등의 기사가 빠지는 날이 없고, 주택가까지 밀려든 그런 유의 불법업소에 대한 뉴스가 연일 보도되고 있는 상황은 정말 심각한 일이다.
인간은 자기 손으로 자기의 등을 긁지 못하는 한계를 지닌 존재라고 하지만 본능을 원시 상태로 방치하고 욕망을 뻔뻔함으로 표현할 만큼 천박한 존재는 아닐 것이다. 품위와 체면을 중시하고 문화를 숭상했던 전통은 접어 두고라도 인간에게는 그런 동물적 감각 말고도 예술과 지식을 향유하고 매력적인 철학과 스포츠 같은 것을 즐길 수 있는 능력이 훨씬 더 많기 때문이다.
벌써 20여 년 전 일이다. 오랜 장막을 열고 개방을 한 중국을 여행하기 위해 나는 사마천(司馬遷·BC145?∼BC90?)이 쓴 중국 역사서 ‘사기(史記)’를 탐독했다. 아시다시피 사마천은 친구 이릉을 두둔하다가 남근(男根)을 잘리는 치욕적인 궁형(宮刑)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는 감옥에서 방대한 사기를 쓴다. 그가 쓴 것은 과거 사실의 기록이 아니라 바로 역사라는 창을 통하여 ‘인간이란 무엇인가’를 규명해 낸 것이었다.
<그런데 꼿꼿한 기둥을 자르고/천년을 얻은 사내가 있다/기둥에서 해방되어 비로소/사내가 된 사내가 있다…모래처럼 시간의 비늘이 쓸려간 자리에/큼지막하게 찍어놓은 그의 발자국을 본다>(졸시 ‘사랑하는 사마천 당신에게’에서)
사기를 탐독할 때 한국 관광객들이 태국에서 정력제로 뱀과 곰발바닥을 사 먹고 성매매를 하다가 비난과 망신을 당한 사건이 일어났다. 남근이 잘리고 감옥에서 책을 써서 역사에 큰 기둥을 세우는 인간이 있는가 하면 타국에까지 가서 엽기적인 동물을 잡아먹고 성매수를 하는 인간도 있다는 사실에 심한 혼돈과 절망이 왔다. 이것은 성의 문제가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자존에 관한 문제였다.
20여 년이 지난 오늘 거의 똑같은 기사가 다시 등장하는 것을 보며 역사는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반복되는 것인가 싶어 가슴이 무겁다.
욕망을 날것으로 표현하는 사회는 원시 사회이다. 불안과 경쟁, 스트레스에 쫓기는 남성들이 죄의식 없이 해소하는 매개물로서의 성은 천박하고 불행한 사회의 증거이다.
남성의 성(性)은 흔히 알고 있는 것처럼 본능적이고 충동적인 것이 아니라고 학자들은 분명히 지적한다. 그것은 남성 중심의 사고와 사회관습이 그렇게 만들었을 뿐이라는 것이다. 이제부터라도 교육을 통하여 꼭 제대로 다시 가르치고 길들이도록 해야 할 대목이기도 하다.
또한 예술 작품에서 광기(狂氣)와 일탈(逸脫)에 대한 예찬이 있기도 하고 인간의 본능으로서의 불꽃같은 충동이 관능과 탐미의 원동력이 되는 것도 보았지만 이것은 다른 차원의 이야기이다.
이번 나로호의 발사를 우리 사회가 욕망 사회에서 고양된 문화 사회로 변환되는 계기로 삼았으면 한다. 세계가 칭찬하는 교육열로 성숙하고 지적(知的)인 사회, 심오한 미적(美的) 감수성을 가진 선진국의 바탕을 만들 필요가 절실한 것이다.
마침 미국의 경제 뉴스 블룸버그 선정 세계 혁신 국가 순위에 한국이 미국에 이어 2위에 뽑혔다는 보도가 있었다. 연구개발, 생산성, 첨단 기술 등 7개 항목이 기준이었다고 하는데 여기에다 창조에 대한 맹렬한 탐구와 지적인 문화 사회라는 항목이 더해져야 할 것 같다. 이번에 우리가 쏘아 올린 것은 단순한 이벤트성 로켓이 아니라 인간의 진정한 꿈과 상상력과 사유가 빛나는 미래여야 하는 것이다.
곧 새봄이 올 것이다. 새 정부도 들어설 것이다. 새로운 문화 사회를 향한 가치관이야말로 진정한 새봄의 의미가 되었으면 한다. 사마천 같은 역사가가 있다면 오늘의 한국을 뭐라 기록할 것인가. 욕망과 물질과 속도로 어지러운 세속(世俗) 가치가 아닌 진정 인간의 존엄을 생각하는 교양 있는 인문 사회로의 대전환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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