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스꽝스러운 옷을 입은 아기 사진이 누리꾼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걸음마를 떼기 전 아기가 팔과 배, 다리 부분에 노란 수술이 달린 옷을 입고 있어 바닥을 기어 다니는 동안 자연스럽게 청소가 되는 모습을 보여준 것. 여기에 ‘태어났으면 밥값을 해라’라는 제목까지 폭소를 자아냈다. 일본에서는 자녀 교육 1순위가 ‘남에게 폐 끼치지 마라’라고 하는데 한국에서는 ‘착하게 살아라’ 다음으로 자주 하는 훈계가 ‘사람은 밥값을 해야 한다’가 아닐까 싶다. 그러니 ‘밥값도 못 하는 놈’이란 소리는 사람 구실 못 한다는 치욕스러운 말이 된다.
‘밥값 논쟁’은 2300여 년 전에도 있었다. 옛 중국 전국시대 제나라 사람 공손추가 스승 맹자에게 물었다. “시(詩)에서 이르기를 ‘일하지 않고 공으로 밥을 먹지 않는다네(不素餐兮)’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군자가 밭을 갈지 않으면서도 먹고사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요.”
여기서 시란 ‘시경(詩經)’의 위풍(魏風)에 나오는 ‘벌단(伐檀·박달나무를 베다)’을 가리키며, 소찬(素餐)은 공도 없이 나라의 녹만 받아먹고 소임을 다하지 않는 것을 뜻한다. 공손추는 농부처럼 농사를 짓는 것도 아니고, 뚜렷하게 하는 일도 없어 보이는 군자라는 이들이 내심 못마땅했던 모양이다.
공손추가 따지듯 묻자 맹자는 이렇게 설명한다. “군자를 등용하면 나라가 편안하고 부유하고 높아지며 번영한다(安富尊榮). 또한 젊은이들이 군자를 좇아 효도하고 공경하며 충직하고 믿음직스러워진다(孝弟忠信). 이러한 것과 일하지 않으면 먹지 않는다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하느냐.”
밭을 가는 일이야 누구나 할 수 있지만 안부존영(安富尊榮), 효제충신(孝弟忠信)과 같이 근본을 위해 애쓰는 군자의 일은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군자가 비록 육체노동을 하지 않더라도 공으로 밥을 먹는 것은 아니라는 설명이다.
전국시대 군자는 오늘날 고위공직자나 사회 지도층 인사에 해당된다. 그런데 이들이 진짜 밥값을 하는지 아니면 한갓 자리만 차지하고 녹만 받아먹는 소찬의 무리인지는 따져볼 일이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모 후보가 국회의원 수 축소를 주장하며 “국회가 민생법률을 만들지 못하는 것이 (의원) 수가 적어서 그런 거냐. 밥값을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얼마나 강하게 있는지 묻고 싶다”라고 했을 때 많은 국민이 호응한 것을 보면, 하는 일에 비해 과한 밥을 먹고 있다는 인식이 많은 듯하다. 국회의원 한 명을 유지하는 비용이 연간 6억 원이 넘고 이들에게 주어지는 특권이 200여 가지라고 한다. 그러나 19대 국회 개원 이후 8개월 동안 전체 300명의 의원이 1인당 9.9건의 법안을 발의했고, 그중 한 건도 발의하지 않은 의원이 5명이라는 통계를 보면 입법기관이라는 지위가 무색하다.
밥값을 한다는 것은 도대체 무엇일까. 자기계발 분야의 스타 강사인 김미경 씨가 ‘언니의 독설’(21세기북스)에서 명쾌하게 결론을 내렸다. “밥값은 밥값 이상을 해야 마음이 편한 거야. 밥값만 하면 약간 찝찝하지. 밥값도 못 하면 치욕스러운 것”이라고. 국회의원들은 세비 삭감, 연금 폐지, 겸직 금지 등이 이슈가 될 때마다 국민들 눈치만 볼 게 아니라 밥값을 하면 된다. 정성수 시인은 ‘밥값’이라는 시에서 이렇게 말한다.
“삼시 세끼 꼬박꼬박 다 찾아먹는/인간들만이 밥값은 고사하고/밥그릇 싸움에 정신이 없다/먹어도 먹어도 허기를 못 채우는 미물보다도 못한 인간들을/우리는 사람이라 부른다.”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내각 인선이 난항을 겪고 있다. 안부존영과 효제충신 같은 근본을 위해 애써줄 군자를 기대하는 것도 아니고, 밥값을 할 사람인지 밥그릇 싸움을 할 사람인지만 가려도 절반의 성공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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