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말 대통령선거가 끝난 뒤 대기업 경영자들이 사석(私席)에서 한 말이다. 경제민주화에 관한 내용만 보면 민주통합당 문재인 후보가 더 강했지만 ‘한다면 한다’는 측면에서 보면 박근혜 당선인이 더 두렵다는 얘기였다. 다른 나라 역사를 봐도 대기업 규제나 복지 확대는 보수당이 집권했을 때 더 힘 있게 밀어붙였다는 말이 따라왔다.
예감이 적중한 걸까.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대기업 총수들이 잇달아 곤욕을 치르고 있다. SK 최태원 회장은 계열사 자금 465억 원을 횡령한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고 법정 구속됐다. 그동안 많은 총수가 법정에 섰지만 대부분 집행유예로 풀려났기에 이번 판결은 이례적이다.
신세계는 정용진 부회장이 베이커리 계열사 부당지원 혐의로 검찰에서 12시간이나 조사받은 데 이어 이마트가 부당노동행위 혐의로 본사 압수수색을 당했다. 한화그룹이 비정규직 사원 2043명을 정규직으로 전환한 것은 수감생활을 하는 김승연 회장의 보석 석방을 위해 ‘성의 표시’를 한 거라는 해석도 나온다.
檢 이어 정권 코드 맞추는 재판부
국민의 눈엔 삼권분립(三權分立)이 엄연한 민주주의 국가에서 사법부의 행동이 이해되지 않는다. 대기업 총수들이 잘못한 게 있으면 평소에 엄벌할 것이지 새 정부 출범을 앞두고 ‘코드 맞추기’처럼 그러는 건 뭔가. 법원 측은 2009년 대법원이 마련한 양형기준에 따른 것이라고 밝혔지만 이는 권고사항인 데다 통상 여론과 사회 분위기에 따라 판결이 달라져온 관례를 보면 전적으로 믿긴 어렵다.
박 당선인이 공약한 ‘경제민주화’는 논란이 많았다. 김종인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이 내세운 경제민주화에 대해 새누리당 경제통인 이한구 원내대표가 “무슨 뜻인지 모르겠다”며 설전을 벌이기도 했다. 경제민주화의 개략적 의미는 정치에서의 민주주의처럼 경제 분야에서도 일부 집단이 나라 경제 전체를 지배하는 데서 벗어나자는 뜻이다. 대기업은 규제하고 중소기업의 힘을 키울 수밖에 없다.
비슷한 사례가 다른 나라에도 있다. 미국은 시어도어 루스벨트 대통령 시절 법정에 서지 않은 경영자가 거의 없었다. 공화당 출신의 루스벨트는 독점금지법을 통해 대기업을 강하게 견제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패배한 일본과 독일은 점령군에 의해 재벌 해체에 가까운 변화를 겪었다. 공교롭게도 미국 일본 독일 모두 그 후 경제가 쇠락하기는커녕 눈부신 발전을 했다.
최근 노키아의 사례는 ‘대기업과 나라경제의 관계’에 대해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핀란드 경제의 30%를 차지했던 노키아가 몰락하면서 핀란드는 휘청거렸다. 하지만 노키아에서 나온 연구개발 인력이 창업한 중소기업들이 신성장동력이 되면서 일부에선 ‘노키아의 몰락이 오히려 핀란드 경제에 이익이 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바람직하기로는 대기업은 글로벌 시장에서 훨훨 날고 정부는 중소기업을 북돋는 게 가장 좋은 방향일 것이다.
노키아 몰락이 핀란드에 득 된다?
대기업 오너들의 수난은 어쩐지 낯설지 않다. 정권이 바뀔 때마다 한두 번 겪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정권 초기 서슬 퍼렇던 기세는 점차 ‘경제를 살리자’는 명목으로 쪼그라들고 정권이 끝날 무렵 대기업집단들은 한층 힘이 세졌다.
박근혜 정부 출범을 앞두고 국회 사법부 정부가 일제히 ‘대기업 손보기’에 나선 것을 보면 의심과 걱정이 앞선다. 실질적 효과 없이 대기업들에 상처만 주는 ‘무늬만 개혁’보다는 한국 경제를 살려낼 구조적 개혁을 해야 한다. 무엇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 노와 사가 상호신뢰 속에 타협할 수 있는 사회적 시스템을 만들어 가야 한다. 정부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만 정부의 방향 제시와 추진력이 중요하다. 소리만 요란한 수레는 비어 있는 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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