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에 있었던 이동흡 헌법재판소장 후보자에 대한 인사청문회와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언론의 사전검증 진행경과를 보면서 문화에 대한 외국의 속설과 함께 다산 정약용 선생이 썼던 ‘예주법종(禮主法從)’이라는 말이 떠오른 것은 전혀 우연이 아니었다고 생각된다.
‘문화란 잊으려고 해도 쉽게 잊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배우려고 해도 쉽게 배울 수가 없는 것’이라는 프랑스의 그 속설은 공교롭게도 다산 선생께서 ‘경세유표’란 책에서 썼던 ‘예(禮)가 주인이고 법은 이를 뒤따른다’는 우리의 유교적 전통도덕률과 무언가 연관되는 측면이 있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우리나라가 법치국가라고는 하지만 법 집행에 앞서서, 또는 법을 집행하는 과정에서도 반드시 고려하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 국민의 도덕적 승복이나 법 감정 또는 흔히 국민정서라고 표현되는 요인들이었음을 우리 국민들은 자주 경험해 왔다.
그리고 그것은 공직자로서의 적격 여부나 신뢰성을 판단함에 있어서도 당사자의 실정법 위반 여부와 관계없이 그 사람을 가늠하는 제1차적 기준이 되어 온 것이 그동안의 사회·문화적 현실이었다고도 볼 수 있다.
지금 돌이켜보면 이동흡 후보자에 대한 부정적 여론은 주로 그의 헌법재판소장으로서의 전반적 신망 또는 품격과 관련된 것이고, 김용준 후보자의 자진 사퇴는 존경받던 법조 원로로서 본인이 미처 예상치 못했던 부동산 보유 경위나 두 아들의 병역 문제를 둘러싼 가족생활의 안정감 침해 우려 때문으로 짐작되지만, 이 기회에 우리는 청문회를 거치는 고위공직자 본인과 청문회에 임하는 국회가 다 함께 숙고해 보아야 할 문제점들을 냉정히 한번 짚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선 청문 대상자의 입장에서는 인사청문회 자체가 공직후보자의 실정법 위반 사실뿐만 아니라 그의 도덕성과 청렴성을 포함하는 공직자로서의 능력과 품성 전반에 대한 신뢰성을 공개적으로 검증하는 데 주안이 있는 제도임을 열린 마음으로 수용(受容)하는 것이 선결과제로 보인다. 더구나 한국사회는 다산 선생도 이미 말씀하신 바와 같이 법보다는 예의나 도덕과 같은 유학(儒學)에서 유래하는 정신적 요인을 더 중요시하는 풍토이고, 그것이 좋든 싫든 마치 우리 문화의 일부처럼 인식되고 있는 것 또한 어김없는 현실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인사청문회와 직접적인 관련은 없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내곡동 사저 터를 아들 명의로 매입하는 것을 시도했던 사건이 특검의 수사대상이 된 일이나, 대통령 주변에서는 ‘법과 원칙에 맞는 사면’이라고 강조했지만 대통령과 가깝다고 알려진 특정의 권력형 부패사범을 굳이 임기 종료를 한 달 앞둔 시점에서 사면 대상에 포함시킨 사례가 국민의 압도적 반대여론에 직면했던 일도 결국 법보다는 국민정서나 도의심을 더욱 중요하게 여기는 우리 사회의 정신풍토와 무관하다고만 볼 수 없을 것이다.
다음으로, 인사청문회에 임하는 국회의 입장에서 한번 살펴보자. 이번 국무총리 후보자의 자진 사퇴 이후 제도적 개선대책을 모색하는 움직임도 있는 모양이지만, 현재의 인사청문회법에 따르더라도 위원들의 양식과 합의 여부에 따라 청문회의 잘못된 운영을 방지할 방법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된다.
우선 법이 규정하고 있는 위원회의 자료 제출 요구를 좀더 합리적이고 절제 있게 운용할 필요가 있다. 법에 따르면 위원회는 국가기관과 ‘기타 기관’에 대하여 인사청문과 관련되는 자료 제출을 요구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필자의 개인적 경험에 따르면 결혼하여 독립생계를 유지하고 있는 아들이 근무하고 있는 사기업에 그 아들의 신용카드 사용금액과 세금공제명세를 5일 이내에 제출하라고 요구해 와 아들과 그 회사에 까닭 없이 미안함을 느꼈던 기억이 있다.
또 법은 개인의 명예나 사생활을 부당하게 침해할 우려가 명백하거나 금융 또는 상거래에 관한 정보가 누설될 우려가 있는 경우에는 회의를 비공개로 할 수 있도록 정하고 있으므로(제14조) 가족의 질병이나 신상 문제 등 당사자들이 민감하게 여기는 사안에 관해서는 합리적인 판단으로 회의의 공개 범위를 신축성 있게 운영해 갈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국회는 무엇보다 흔히 논란이 되는 본인과 가족의 병역 문제, 허위의 전입신고, 부동산 보유, 논문 표절 등 사례를 통과기준별로 집적하여 이를테면 법원의 판례처럼 활용하면서 당사자와 국민에 대한 판단과 설득의 자료로 적절히 활용할 수도 있다고 본다.
청문회를 바라보는 국민과 언론의 눈도 조금은 더 냉철해야 하지 않을까? 헌법적 가치를 중심으로 볼 때 사회는 도덕성 위주에서 법치 위주로 점차 바뀌고 있는 듯한 양상인데, 그렇다면 국민적 요구와 기대도 어느 수준에서 적절히 이성적이어야만 할 것이다. 인사청문회 제도가 국민의 법치 수준과 도덕적 기대감이 알맞게 교직(交織)되는 아름다운 검증, 착한 다짐의 마당이 될 수는 영 없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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