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인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누구나 안타까움과 슬픔을 느낀다. 먼저 드는 생각은 자살을 선택하기까지 본인이 겪어야만 했던 깊고 큰 절망에 대한 슬픔이다. 자살 생각을 거듭하다 나중에 회복된 우울증 환자들 중에는 당시 겪었던 괴로움을 ‘어둡고 끝이 없을 것 같은 터널을 걷는데, 유일한 빛은 자살밖에 없다는 느낌’이라고 말한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자살하면 남겨진 가족들은 외상후스트레스 장애를 겪는다. 또 ‘살아남은 자로서의 죄책감’을 느낀다. 자살하고 싶다는 분들에게 “자살을 시도하지 못하게 하는 마지막 이유는 무엇인가”라고 물으면 “어머니가 너무 슬퍼하실 것 같아서” “엄마가 없으면 아이들이 잘 자랄 수 없을 것 같아서”라는 답이 제일 많다. 자신의 삶이 자신의 것만은 아니라는 것, 사랑하는 가족과 공동 소유라는 사실을 떠올리게 되는 것이다.
가족뿐이 아니다. 상황이 아무리 어렵더라도, 아무리 우울증이 깊더라도 살아만 있다면 기회는 다시 온다. 그리고 다시 일어섰을 때, 그 사람의 인생은 많은 사람에게 어려움을 겪지 않고 살아온 사람의 인생과는 차원이 다른 진실한 위로가 되게 된다.
아흔이 넘어서까지 연주를 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음악으로 위로를 준 폴란드 태생의 피아니스트 아르투르 루빈스타인(1887∼1982)은 젊은 시절 미국 진출 후 혹독한 평가를 받았다. 투자자들에게까지 압박을 받던 그는 자살을 시도했지만, 목을 맸던 허리띠가 낡아 떨어지는 바람에 다행히(!) 실패한다. 이후 그는 많은 레코딩을 남겼다.
지금도 유튜브에서 그의 이름을 검색하면 백발의 노인이 된 루빈스타인이 브람스의 카프리치오를 연주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마흔 즈음 결혼해서 낳은 자녀와 손주들 중에는 훌륭한 배우들도 나왔다. 그가 자살로 생을 마감했다면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루빈스타인이 섭렵한 다양한 레퍼토리 중에는 세르게이 라흐마니노프(1873∼1943)의 피아노협주곡 2번이 있다. 그러나 이 곡은 하마터면 세상에 태어나지 못할 뻔했다. 자신의 1번 교향곡이 끔찍한 혹평을 받은 뒤 라흐마니노프는 3년간 거의 아무 곡도 쓰지 못했을 뿐 아니라 자살을 생각할 정도로 심한 우울증에 빠진 것이다.
이런 라흐마니노프를 구원한 것은 정신과 의사 니콜라이 달이었다. 그는 극심한 슬럼프에 빠진 라흐마니노프에게 좋은 곡을 작곡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불어넣었다. 차츰 우울증에서 벗어난 라흐마니노프는 작곡 활동을 재개해 마침내 피아노협주곡 2번을 완성하고 감사의 표시로 이 곡을 달에게 헌정했다. 이후 라흐마니노프는 여러 명곡을 남겼다. 우리가 루빈스타인이 녹음한 라흐마니노프의 2번 피아노협주곡을 들을 수 있는 것은 두 사람이 자살을 떠올릴 정도로 심한 고통을 극복하고 삶 가운데서 새로운 희망을 발견해낸 덕분인 것이다.
세상에 이름이 나야만 다른 이들에게 감동과 희망을 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사업 실패로 노숙인이 되었던 사람이 서울역 환승도우미로 성실하게 일하면서 매일 빚을 갚아 나가는 것이나, 부자유스러운 몸으로 태어나 수없이 자살을 생각했던 사람이 현재는 강연 등을 통해 희망과 행복을 세계 각국에 전하고 있는 모습은 그 자체가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이 된다.
우리는 보통 ‘이성이 감성을 조절한다’고 생각하지만 실은 그 반대일 때가 많다. 감정이 생각까지도 지배하는 것이다. 따라서 아주 깊은 우울증 상태에서는 앞에서 말한 생각의 전환이라는 인지적 접근은 도움이 안 될 때가 많다.
그렇다면 혹시 자살을 생각하는 가족이나 친구가 있다면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그런 낌새가 느껴지는 사람들에게 혹시라도 “자살하고 싶냐”고 물어보면 도리어 그 사람들이 생각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하게 만들지 모른다고 걱정하는 경우가 있다. 하지만 그럴 필요가 없다. 자살하고 싶은지 물어본다고 없던 생각이 생기는 게 아니라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다.
그러니, 느낌이 좋지 않으면 반드시 “죽고 싶은 생각이 드는지” 물어야 한다. 심상치 않다고 느껴지면 적극적인 치료적 도움이 필요하다. 자살할 가능성이 20%, 그렇지 않을 가능성이 80%라 해도 20%에 속하는 선택을 했을 때 결과는 돌이킬 수 없는 최악의 상황이 되기 때문이다. 짧은 입원 치료를 위해 직장에 휴직계를 내면 사람들이 알게 될까 봐, 혹은 약물 부작용이 걱정되어 이 작은 가능성을 애써 무시했던 가족들이 일이 벌어진 후에 가슴을 치며 후회하는 경우를 보았다.
마지막으로 조심스럽지만 한 가지 종류의 자살을 더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사회에 대한 분노로 인한, 또는 ‘대의를 위한’ 자살의 경우이다. 김지하 시인이 최근 동아일보와 한 인터뷰(1월 9일자)를 계기로 그가 1991년에 쓴 ‘죽음의 굿판을 걷어치워라’라는 글이 다시 화제가 됐다.
한때 나도, 내가 그랬다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젊었을 때 치열한 감정과 대의에 대한 강한 확신이 있었다. 피가 끓는 젊은 시절엔 올바르고 중요한 얘기를 들어주지 않는 사회에 외칠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죽음이라는 생각이 드는 때가 올 수도 있다.
하지만 이러한 때에도 반드시 ‘살아서’ 말해야 한다. 변화가 많이 느릴지라도, 효과가 많이 더딜지라도 살아서 말해야 한다. 죽어야만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지만 살아 있어야만 할 수 있는 것, 경험할 수 있는 것, 알 수 있는 것은 수없이 많다. 이것은 필자가 정신과 의사나 교수로서가 아니라 1980년대에 대학생이었고 이제 한 중년이 된 사람으로서 진심으로 바라는 이야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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