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청와대에서 열린 대통령 직속기구의 고별 만찬에 참석했다. 나는 평소 이래저래 바쁘다는 이유로 출석률이 낮은 편이었지만 그 기구의 마지막 행사여서 만사를 제쳐놓고 나갔다. 참석 대상자 40여 명 중에 절반가량이 얼굴을 비쳤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이 소집한 회의였다면 출석률이 100%에 육박했을 것이다. 5년마다 나타나는 권력의 낙조(落照)가 청와대 용마루를 물들이고 있었다. 이명박 대통령(MB)도 결국 임기 말에 측근 비리로부터 자유롭지 못했다. MB의 집권기간 내치(內治)의 혼선은 상당부분 친형인 이상득 전 의원과 관련이 깊다. 박 당선인의 반대 속에 강행한 마지막 ‘셀프 사면’도 여론이 나빴다.
MB는 이날 모임의 마무리 발언에서 4대강 사업에 끝까지 반대하던 가톨릭 주교에게 예를 갖추어 국토해양부 장관을 보냈던 이야기를 했다. 그러나 주교가 설명을 듣지 않겠다고 하는 바람에 장관은 헛걸음을 했다. MB는 “낯선 사람의 고해도 들어주면서 국책사업의 진행상황에 대한 설명을 안 들어주는 신부가 이해가 가지 않았다”고 서운함을 토로했다. 그러고 고해성사와 관련한 농담을 했으나 아무도 웃지 않았다.
최근에는 감사원도 4대강 사업의 뒤통수를 쳤다. 감사원은 4대강의 16개 보 가운데 15개에 크고 작은 문제가 있다는 감사보고서를 내놓았다. 국토부와 감사원이 적용한 기준이 달라서 다툼의 여지가 있었다. 감사원은 감사보고서에는 ‘미흡’이나 ‘부적절’이라는 지적을 해놓고 보도자료에는 ‘부실’이라는 표현으로 강도를 높였다. 일부 언론은 이를 ‘총체적 부실’로 규정했다.
청와대가 서운해하는 것은 발표 시점이다. 태국 정부가 추진하는 12조 원 규모의 통합 물관리 사업 국제입찰을 목전에 두고 감사원 발표가 나왔다. 2011년 대규모 홍수 피해를 겪은 태국이 25개 주요 강의 물관리 통합 시스템을 구축하는 사업이다. 한국은 10개 세부 프로젝트에 모두 우선협상 대상자로 선정됐지만 경쟁자인 중국과 일본이 감사원의 ‘총체적 부실’ 감사 결과를 이용하려 들 수도 있다. MB는 아랍에미리트(UAE)가 발주한 원자력 발전소와 태국의 물관리 사업 수주를 대통령이 아니라 대기업 회장처럼 챙겼다. MB는 UAE 왕세자에게 다섯 번이나 전화를 걸었으나 퇴짜를 맞고 여섯 번 만에 통화를 해 계약을 성사시켰다고 털어놓았다.
고별 만찬의 참석자들이 돌아가며 MB에게 덕담을 했다. 한 참석자가 “MB가 747(7% 경제성장, 1인당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경제대국) 공약은 지키지 못했지만 미국 금융위기와 유럽 재정위기로 다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들이 마이너스 성장을 할 때 한국은 플러스 성장을 했다”고 평가했다. MB는 감격스러웠던지 마무리 발언에서 꽤 길게 부연 설명을 했다. MB는 “2009년 경제위기 때 유럽에서 제일 잘나가는 독일의 경제성장률마저 ―5.1%를 기록했을 때 한국은 0.3% 성장을 했다. 이것이 한국경제의 신뢰도를 높여 일본을 앞지르는 계기가 됐다”고 말했다. MB는 “기적의 0.3%”라고 자찬(自讚)했지만 세계 경제위기와 저성장으로 서민의 삶이 팍팍해져 대통령의 인기는 없었다.
MB는 정치적으로 새로운 기록을 세웠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자기 손으로 직접 만든 당에서 쫓겨나지 않은 대통령이 없었다. 한나라당은 새누리당으로 이름이 바뀌었지만 정권은 재창출됐고 MB는 당적을 유지했다.
민주화 이후 한국의 대통령들이 퇴임을 전후해 불행을 겪는 정치문화는 지속되고 있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퇴임 후 감옥에 갔고, 김영삼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중 아들들이 교도소에 들어갔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검찰 수사를 받던 중에 부엉이 바위에서 뛰어내렸다. MB도 이 점에 관해서는 마음이 무거웠을 것이다.
노 전 대통령의 죽음은 사실 촛불시위가 촉발한 것이었다. MB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진보단체 사람들이 다 모여서 정권을 뒤흔들겠다는 계획이었다”고 광우병 촛불시위의 성격을 규정했다. MB 정부를 3개월간 마비시킨 촛불시위가 수그러든 뒤 노 전 대통령의 평생지기인 박연차 씨의 태광실업에 대한 국세청의 세무조사가 시작됐다. 이 세무조사를 바탕으로 검찰 고발이 이뤄졌고 대검 중앙수사부가 나섰다. 노 전 대통령을 따르던 사람들은 MB가 정치 보복을 했다고 비판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 전 대통령이 법정에서 검사와 용기 있게 증거와 법리로 결백을 다투는 모습을 보였더라면 좋았을 것이다.
퇴임한 대통령은 정파를 초월해 국가와 사회에 봉사하는 삶을 사는 것이 좋다. 전직 대통령이 현실 정치에 관여하면 정치 보복을 부르기 쉽다. MB는 최근 한 인터뷰에서 “나라에 부담을 안 주면서 도움이 될 일을 조용하게 하며 지내겠다”고 말했다.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 후 재단을 만들어 에이즈 퇴치와 기후변화, 공중보건 등 다양한 분야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고 있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 후 평화협상 사절과 인류 봉사활동을 한 공로로 노벨 평화상을 받았다. 한국에서 아름다운 전직 대통령 문화를 가꾸는 것도 MB가 새로 개척해야 할 분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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