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설식이 끝난 직후 우리는 밴플리트 사령관에게서 뜻밖의 소식을 전해 들었다. 아들이 행방불명됐다는 것이다. 전폭기 조종사로 참전한 중위 밴플리트 2세는 전날 밤 B-26기를 타고 군산비행장을 발진해 북한 지역에 야간 폭격 차 출격한 후 영영 돌아오지 않았다. 밴플리트 사령관은 이미 이 소식을 알고 식에 참가했으나 평소와 다름없이 태연하게 행동했다. 속은 얼마나 까맣게 타고 있었을지 생각하면 같은 아버지 입장에서 가슴이 저렸다.”
6·25전쟁 영웅인 백선엽 장군이 회고록인 ‘군과 나’에서 제임스 밴플리트 미8군사령관(중장)이 외아들을 잃은 비극을 묘사한 대목이다.
미국 웨스트포인트(육사) 출신인 밴플리트 장군은 1951년 4월 미8군사령관에 취임했다. 당시 중공군이 춘계 대공세에 나서자 상부에서 ‘서울을 포기하고 한강 이남으로 철수하라’라고 권유했다. 하지만 그는 서울을 끝까지 지켜 중공군의 남하를 저지했다. 그리고 1년 뒤 세상에 하나뿐인 아들을 전장에 바치는 슬픔을 겪었다. 당시 아들의 수색작전 상황을 보고 받은 그는 작전을 중단하라고 지시했다. 아들을 찾느라 적진에 장병들을 보내는 건 위험하다는 판단에서였다.
6·25전쟁 때 ‘혈육’을 잃은 건 그뿐만이 아니다. 미군 장성의 아들 142명이 참전해 35명이 죽거나 다쳤다. 월턴 워커 미8군사령관도 아들과 함께 참전했다가 같이 전사했다. 마크 클라크 유엔군사령관(대장)의 아들도 일선 중대장으로 ‘단장의 능선’ 전투에서 중상을 입고 후송됐지만 결국 숨졌다.
영국의 대표적 명문 사립학교인 이튼 칼리지의 졸업생 중 2000여 명은 1, 2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했다. 대부분 고위층과 귀족의 자제들이다. 아프가니스탄전에 참전한 엘리자베스 2세 여왕의 둘째 손자이자 왕위 계승 서열 3위인 해리 왕손도 이 학교 출신이다. ‘공적인 일에 용기 있게 대처하라’라는 이 학교의 교훈(校訓)은 오늘의 영국을 있게 한 정신적 지주다. 이처럼 노블레스 오블리주(사회 지도층의 도덕적 책무) 중에서도 위국헌신(爲國獻身)의 가치는 더 값지고 고귀하다.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초유의 안보위기에 직면한 한국 사회의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현주소를 자문해 본다. 병역이 국민의 의무인 이 나라의 지도층과 그 아들 중엔 유독 병역 면제자가 많다. 군 통수권자인 대통령뿐 아니라 국무총리, 여야 고위 정치인들도 이런저런 ‘사유’로 군대에 가지 않은 경우가 적지 않다. 한 유명 정치인은 아들의 군 미필에 발목이 잡혀 대선(大選)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셨다.
지난달 김용준 국무총리 후보자의 자진 사퇴도 두 아들의 병역 면제 의혹이 결정적 원인이었다. 김 후보자는 두 아들의 병역 면제 사유가 정당하다고 항변했지만 선뜻 공감이 가지 않았다. 자식을 군에 보낸 대부분의 부모들도 심경이 별반 다르지 않았을 것이다. 뒤이어 지명된 정홍원 총리 후보자의 아들도 1997년 첫 신체검사에서 1급 현역 판정을 받았으나 4년 뒤 재검에서 디스크(수핵탈출증)로 5급 판정을 받아 병역이 면제됐다고 한다.
지도층이나 부유층이 원정출산이나 장기유학으로 자식을 군에서 빼돌린 사례는 어제 오늘의 얘기가 아니다. 그래서일까. ‘힘없고 백 없는 서민의 자식만 군대에 끌려간다’, ‘군대 간 사람은 어둠의 자식, 안 간 사람은 신(神)의 아들’이라고 자조하는 분위기가 아직도 남아 있다. 오죽했으면 지도층과 부유층 인사, 그 아들의 병역사항을 특별 관리하는 내용의 병역법 개정까지 추진됐을까. 이런 마당에 ‘노블레스 오블리주’를 거론하기조차 낯 뜨겁다고 느끼는 건 필자만의 생각일까.
최근 병무청은 외국 영주권을 포기하고 자원입대한 장병들의 수기집을 발간했다. 군 복무를 피할 수 있는 ‘특권’을 포기한 청년들의 숭고한 선택에 고개가 절로 숙여졌다.
곧 출범할 박근혜 정부는 ‘국민대통합’을 화두로 내걸었다. 그 요체가 바로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실천이 아닐까. 그 출발점은 정치 지도자를 포함한 지도층과 부유층이 병역 의무를 앞장서 이행하는 것이라고 본다. 이는 어떤 국난도 극복할 수 있는 국가 단합을 이뤄 내고 공정하고 정의로운 사회를 앞당기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이게 안 되면 대한민국은 미래도, 희망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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