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초 미국 워싱턴DC에서 노스캐롤라이나로 내려오는 95번 고속도로. 백미러에 비친 스포츠카의 모습은 공포 자체였다. 정속 주행하는 자동차들 사이로 급차선 변경을 반복하며 나를 향해 질주해오고 있었다. ‘칼치기’ 추월이었다. 저러다 내 차를 들이받는 건 아닐까. 욕이 입 밖으로 튀어나오려는 순간 굉음을 내며 내 차를 지나쳐 갔다.
10분쯤 더 달렸을까. 스포츠카는 다른 흰색 승용차와 함께 갓길에 멈춰서 있었다. 승용차 외관은 평범해 보였지만 특이하게도 유리창 안쪽에 경광등이 켜져 있었다. 제복 경찰이 일반 승용차를 타고 반칙운전을 단속하는 언더커버(Undercover) 차량이었다. 우리말로는 비노출, 즉 암행(暗行) 단속 경찰차다. 언더커버가 어딘가에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다수 미국인들이 준법 운전을 한다는 게 동승한 미국인 친구의 설명이었다.
언더커버가 문득 떠오른 건 최근 우연히 본 네이버 지식인의 질문과 답변 때문이다. 어느 누리꾼이 ‘경찰의 함정 단속은 불법 아닌가요’라고 질문했다. 2개의 답변이 붙었다. 하나는 함정 단속이 반드시 나쁜 게 아니며 교통안전을 위한 고육책일 수 있다는 취지의 답변이었다. 다른 답변은 이렇다. ‘경찰을 카메라로 찍어 행정소송하고, 청문감사를 요청해라.’ 질문자는 경찰을 괴롭혀서 단속권을 위축시키는 후자의 방식에 동의했다. 한숨이 나왔다.
선진국의 교통단속과 비교하면 한국처럼 ‘친절한’ 나라도 없다. 경찰 규정에 따르면 이동식 단속카메라를 운영할 때 반드시 전방에 예고 입간판을 세우고, ‘잘 보이는’ 곳에서 노출 단속을 해야 한다. 고속도로에 있는 고정식 단속카메라도 전방 2km, 1km 지점마다 자신의 존재를 알려준다. 이런 데도 단속에 걸리면 바보다.
한국 경찰도 비노출 단속을 한 적이 있다. 2001년 시행한 교통법규 위반 차량 신고보상제, 일명 ‘카파라치’ 제도다. 그러나 단속에 걸린 운전자들의 강력한 반발로 얼마 가지 않아 중단됐다. 국민을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하는 함정 단속이라는 논리도 동원됐다. 경찰이 덫을 놓고 단속한 게 아니므로 함정이라는 말은 허구인데도 말이다.
이후 10여 년간 한국에서는 비노출 단속이 없었다. 그 사이에 반칙운전은 질긴 생명력을 유지하며 착한 운전자와 보행 약자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갔다. 반면 미국 일본 영국 등 선진국은 비노출 단속을 통해 반칙운전자를 가려내며 도로 위의 ‘참극’을 줄여나가고 있다.
우리 경찰도 언더커버 도입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반칙운전자로부터 욕을 먹더라도 말이다. 단속인력이 부족하다며 증원해 달라는 타령도 이제는 진부하다. 언더커버 1대의 존재감만으로도 수십 명의 교통경찰을 동원한 효과를 낼 수 있다. 한 해 반칙운전으로 숨진 사람이 5000명이 넘는다. 언더커버 도입으로 사망자 수를 100명만 줄일 수 있다면 다수의 착한 운전자로부터 박수를 받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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