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핵 문제가 우리 국민의 분노와 함께 정부는 물론 국제사회의 커다란 당면과제로 부상했다. 그러나 이럴 때일수록 차분하게 지난 20년 동안의 북핵 대응 프로세스를 점검해 보고 그 실패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북핵 대응 프로세스는 크게 2단계로 나눌 수 있다. 1단계는 1994년 한반도를 전쟁 직전까지 내몰았던 북한 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북-미 제네바 합의에서 시작됐다. 제네바 합의는 대북 경수로발전소 제공, 한반도 비핵화, 핵 확산 방지를 위한 노력 등을 담았다. 그러나 미국에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들어서고 2001년 9·11테러가 발생하면서 북한은 ‘악의 축’으로 지목됐고, 또 핵 선제공격 대상으로 명시됨에 따라 제네바 합의는 실질적으로 폐기되기에 이르렀다.
2단계는 2002년 10월 미국 제임스 켈리 차관보 방북 이후 고농축우라늄을 이용한 북한의 새로운 핵개발 계획 의혹이 제기되면서 시작됐다. 북한의 핵개발 계획 시인으로 미국은 2002년 12월 중유 제공을 중단했고 이에 북한은 미국의 합의 위반을 내세우며 2003년 1월 핵확산금지조약(NPT)을 탈퇴했다. 경수로 건설도 2003년 11월 중단됐다. 이후 북한은 2005년 2월 핵무기 보유를 선언했고, 영변원자로에서 폐연료봉 8000개를 인출해 핵무기를 제조할 수 있는 플루토늄을 추출했다.
북한은 핵무기 보유선언 다음 해인 2006년 10월 1차 핵실험, 2009년 5월 2차 핵실험을 단행했다. 2010년 11월에는 미국의 핵 전문가 시그프리드 헤커 박사를 초청해 우라늄 농축을 위한 원심분리기를 갖춘 영변 시설을 공개했다. 그러고 국제사회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2013년 2월 12일 3차 핵실험을 단행한 것이다.
이제 북핵 대응 프로세스는 완전한 실패를 인정하는 가운데에서만 답을 찾을 수 있다. 한반도에서 비핵화가 가능하다는 환상을 버리고 냉정하게 대응책을 강구해야 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대응책은 뭐가 있을까.
첫째, 북한의 행동변화를 유도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제재 방안이 필요하다. 그동안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결의안 1718호, 1874호를 비롯해 우리 정부의 5·24조치 등 여러 방안이 등장했으나 별로 효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눈여겨볼 방안은 2005년 북한을 국제 돈세탁 창구로 지목하고 자금거래를 동결해 고통을 줬던 강도 높은 금융제재다. 그리고 경제제재는 물론 해상봉쇄, 군사적 옵션도 배제하지 않는다는 인식을 확실히 심어줘 핵개발은 체제붕괴로 이어질 수 있다는 확실한 신호를 줘야 한다.
둘째, 중국의 동참을 이끌어내야 한다.
그동안 우리는 중국과 많은 교류를 해왔다. 그러나 안보문제로 돌아서면 중국의 태도는 하루아침에 달라진다는 것을 천안함 폭침 사건에서 목격했다. 중국이 나진·선봉지역이나 신의주·황금평지역 특구회의까지 취소하는 등 북한제재 의지를 보이고 있으나 북한의 핵 개발이 우리는 물론 일본의 핵무장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과 한미일 안보협력체제가 더욱 공고해질 수 있다는 신호를 중국에 보내야 한다.
셋째, 북한 핵이 우리에게 군사적 위협이 되지 않을 정도로 군사능력을 확고하게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핵 문제와 관련해 우리는 그동안 미국의 핵우산정책인 확장억지전략에만 의존해왔다. 그러다 보니 정보감시, 미사일방어, 정밀타격 능력 등에 있어 미흡한 점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이제는 한반도 비핵화를 전제로 한 군사능력은 그 실효성을 의심받을 수밖에 없다. 그동안 우리는 북한의 비대칭 전력에 대비한다는 수사적 어구를 많이 들어왔으나 천안함 폭침에서 그러한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다. 북핵과 관련하여 그렇지 말라는 보장이 없다.
넷째, 북핵은 물론이고 모든 대북정책에 있어 일관성 유지가 필요하다.
북핵 문제는 미국의 클린턴, 부시, 오바마 정부를 거치면서 오락가락해온 것이 사실이다. 우리 역시 정부마다 달랐다. 이와 같이 일관성 없는 정책이 오늘의 북핵 문제에 일말의 책임이 있음을 통감해야 한다. 이는 누구를 탓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 한민족의 생존뿐 아니라 동북아 나아가 세계의 평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대북정책만큼은 여야, 정권, 이념을 뛰어넘어 최대공약수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다섯째, 말보다 행동이 앞서야 한다.
우리는 그동안 행동보다 말이 앞서 왔다. 대표적인 예가 천안함 사건 직후의 5·24조치다. 대북 심리전을 비롯해 많은 조치 계획을 발표해놓고도 행동이 뒤따르지 않았다. 그러다 보니 군사적 의지도 능력도 의심받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국민은 신뢰하지 않고 북한은 두려움을 갖지 않는 상황이 되었다.
우리는 한반도 비핵화가 전제가 아닌 북한 핵 보유를 염두에 두는 새로운 상황을 맞았다. 따라서 새로운 사고, 방법, 행동을 모색해야 한다. 상황은 엄중하고 분노가 일고 인내하기 어렵지만 그래도 차분하게 조용히 행동으로 우리의 의지와 능력을 보여주어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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