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만 나면 산으로 달려가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은 산과 정분이 난 듯 하산해서도 산을 그리워한다. 이 시가 실린 시집 ‘불일폭포 가는 길’은 산, 그중에서도 지리산 고샅의 사시사철 밤낮을, 때로는 수줍게 때로는 호방하게, 육정에 가까운 사랑으로 그리고 있다. 지리산! 그 풍광 속에 한국 현대사의 비극을 품은 험준하고 크나큰 산!
살아내는 일이 너무 힘겨워서 그만 흥미를 잃어버린 친구가 있다면, 어떻게 해줘야 할까? 생은 냉엄한 것. 대신해서 살아줄 수도 없고, 어떤 위로의 말도 그의 절망을 해결할 수 없다. 생의 백척간두에서 신경이 나달나달해진 그에게 산사나이는 권한다. 지리산 써레봉을 걸어 보라고. ‘왼쪽은 가물가물 햇살 벼랑이고/ 오른쪽은 푸르고 깊은 수해 빛’, 그 절대적인 생과 사의 경계를 걸으면 ‘눈이 상봉을 향하여 갈증을 풀 때 산등은/눈부신 쪽으로 몸을 끌어가려 하느니’, 정신이 번쩍 날 것이라고. ‘한번 무너지면 돌아올 수 없는 길 위에서/ 몸은 스스로 균형을 잡고’, 그렇게 이승을 마저 걸으라고, 시인은 꾸짖지도 위로하지도 않고, 서늘하게 이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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