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비서실장은 대통령을 가장 가까운 위치에서 보좌하면서 사실상 국정의 컨트롤타워인 비서실 전체를 꾸려가야 한다. 허태열 비서실장 내정자는 친박(친박근혜) 핵심 인사로 상당 기간 박근혜 당선인과 호흡을 맞췄으며 3선 의원 출신이어서 정치권을 잘 아는 ‘정무형’이다. 그는 앞으로 대통령의 인사를 총괄적으로 돕는 인사위원장 자리를 겸하도록 되어 있어 역대 어느 대통령비서실장보다 역할이 커졌다. 허 내정자는 대통령과 내각, 정치권, 국민과의 소통에 각별히 신경을 쓰고 대통령의 귀에 거슬리는 직언(直言)도 과감하게 전할 수 있어야 한다.
그의 동생이 지난해 4·11총선 때 5억 원의 공천 뒷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된 것이나, 본인의 부적절한 발언으로 구설에 올랐던 것은 흠이다. 허 내정자는 과거 정권에서 끊이지 않았던 대통령 측근 비리가 반복되지 않도록 주변 관리를 철저히 할 필요가 있다.
박 당선인이 차기 정부 내각에 관료 출신을 다수 발탁해 전문성과 안정성에 중점을 두었다면 청와대 참모진 인선은 ‘친정 체제의 구축’에 초점을 맞춘 느낌을 준다. 국무총리를 포함한 장관 후보자 18명 가운데 12명이 관료 또는 준관료 출신인 데 비해 청와대 참모진은 6명 가운데 4명이 친박이거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출신이다. 박 당선인이 대선 과정에서 약속한 책임총리와 책임장관제를 보장하면서도 국정의 큰 틀은 자신의 의지대로 이끌고 가겠다는 포석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비서실 인사를 볼 때 차기 정부에선 청와대의 힘이 내각을 압도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비서실은 참모 역할에 충실해야 한다. 대통령비서실이 행정과 인사에 일일이 개입하면 내각이 유명무실화하면서 국정이 한쪽으로 쏠리는 현상이 발생할 수 있다. 비서실이 제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하려면 비서실장이 중심을 잡아야 하고 이를 위해서는 대통령의 의지가 중요하다. 박 당선인은 내각과 청와대 참모진의 역할 분담을 놓고 명확한 선을 그어줘야 한다.
박 당선인은 3실장 9수석 체제의 청와대 참모진 가운데 겨우 절반의 자리만 인선을 마쳤다. 국회 인사청문 대상이 아닌 청와대 참모들의 인선이 늦어지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대통령비서실이 팀워크를 갖춰 정상적으로 보좌 기능을 발휘하려면 나머지 6개 수석비서관과 비서관, 행정관 인선도 완결해야 한다. 박 당선인의 대통령 취임이 불과 6일 앞으로 다가왔으나 정부 조각(組閣) 작업의 지연으로 새 정부의 정상 출범은 사실상 불가능해졌다. 여기에 대통령비서실까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면 임기 초 국정에 혼선을 초래할 수 있다. 박 당선인이 ‘준비된 대통령’이라는 말을 들으려면 비서실 인선에 속도를 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