퀴즈로 시작해보자. 한강 반포대교 남단의 서쪽에 있는 인공 섬 이름은 새빛둥둥섬일까, 세빛둥둥섬일까. ‘새로운 빛’의 의미일 것으로 생각하기 쉽지만 정답은 ‘빛의 삼원색, 빨강 파랑 초록’을 뜻하는 세 빛이다. 다양성과 조화, 화합을 상징하는 이름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세빛둥둥섬은 다양성과 화합의 심벌이 아니라 전현직 서울시장 간 갈등의 천덕꾸러기가 되고 있다.
꽃씨, 꽃봉오리, 활짝 핀 꽃 형태의 3개 섬으로 이뤄진 세빛둥둥섬은 2011년 5월 공사가 거의 끝나 서울시로부터 가(假)사용승인을 받고 이탈리아의 명품 브랜드 펜디의 모피 패션쇼를 열었다. 꽤 화려하고 성대한 국제행사였다. 그해 9월에는 준공검사까지 받았다.
21개월째 놀고 있는 꽃 모양의 섬
하지만 1390억 원을 들여 만든 이 섬들은 펜디 행사 후 지금까지 2년간 놀고 있다. 방치된 구조물이 도시의 흉물로 변해가는 것이다. 세빛둥둥섬을 놀리게 된 결정적인 계기는 준공 한 달 전의 오세훈 전 시장 사임과 한 달 후의 박원순 시장 취임이다. 박 시장은 세빛둥둥섬을 포함한 한강르네상스 사업을 오 전 시장의 대표적인 전시행정이라고 규정하고 전면 재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서해뱃길, 노들섬 오페라하우스, 한강 수상호텔 등 한강르네상스의 나머지 사업은 폐기됐다.
박 시장의 지시로 세빛둥둥섬에 대해 특별감사가 벌어졌고 작년 7월 감사보고서에서 ‘시작해서는 안 될 총체적 부실사업’쯤으로 낙인 찍혔다. 현직 시장이 이토록 싫어하는 곳에 입주할 점포는 없다. 세빛둥둥섬은 지금까지 텅텅 비어 월 6억 원씩의 금융비용만 발생하고 있다.
최근 박 시장은 이 섬과 관련해 “5월에는 정상화하겠다”고 말했다. 이 와중에 대한변호사협회 지자체세금낭비조사특별위원회는 세빛둥둥섬 관계자들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오 전 시장은 기다렸다는 듯 말문을 열었다. 그는 “세빛둥둥섬 등에 대한 공격이 있을 때마다 전임 시장이 현 시장의 행정에 토를 다는 것처럼 보일까봐 무대응해왔지만 검찰 고발까지 당한 만큼 더이상 침묵할 수 없다”고 속내를 털어놨다.
사실 박 시장이 주도한 이 논란에는 오해나 오류가 많다. 대표적인 것이 특혜 시비다. 세빛둥둥섬 사업컨소시엄인 ㈜플로섬의 제1 대주주는 효성(62.3%)이다. 당초 C&우방이 최대주주였으나 경영난으로 사업을 포기하자 애가 탄 서울시 고위공무원들이 STX, 대우건설, 효성 등을 찾아다니며 끈질기게 설득한 끝에 효성이 ‘단기 수익성은 낮지만 무형적 미래투자가치를 평가해’ 대타 자리를 수락한 것이었다. 당국이 사업을 특혜구조로 만들어놓고 효성에 선물로 준 게 아니다.
‘서울시가 시의회의 동의를 받지 않은 채 계약 변경을 했으므로 무효’라는 주장도 있다. 그렇다고 해도 이는 서울시 내부의 문제일 뿐 민간업체와의 계약을 무효화할 사유는 못 된다. 오 전 시장은 “법적으로 시의회의 동의가 필요 없는 사항”이라고 반박했다.
사업 질질 끄는 서울시가 세금낭비 요인
세금낭비 지적도 있다. 이 섬은 기업이 조달한 자금으로 만들어 운영하다가 정부에 기부하는 수익형 민자사업(BOT) 방식이다. 플로섬에 29.9%의 지분을 가진 SH공사 외에는 모두 민자여서 세금낭비 지적은 지나치다. 오히려 서울시가 시간을 끌면서 사업을 좌초시킬 경우 시 금고를 열어 플로섬에 배상해야 한다. 개장 지연이야말로 세금낭비의 폭탄인 것이다.
한강르네상스에 전시성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디자인사업이란 게 원래 그런 거니까. 설혹 오 전 시장의 행정에 치명적인 문제가 있다고 치자. 박 시장은 그것은 그것대로 따지되, 거금을 들여 완성한 구조물은 제대로 활용하는 게 순리다. 민간업체와 이미 맺은 계약을 후임 시장이 흔들어서는 절대로 안 된다.
서울시민으로서 세빛둥둥섬이 다양성과 조화의 ‘세 빛’ 자리를 되찾고, 새로움과 창의의 ‘새 빛’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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