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르디와 바그너의 탄생 200주년이지만 한국 오페라계의 ‘대세’는 베르디의 45년 후배인 푸치니, 특히 그의 마지막 작품 ‘투란도트’다. 수지오페라단이 3월 29일부터 서울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이 작품을 공연하고, 베세토오페라단도 10월 30일부터 같은 무대에 이 작품을 올릴 예정이다. 예술의전당도 이 작품을 제작해 8월 CJ토월극장에서 공연한다. ‘투란도트’는 2009년 한 조사에서 ‘한국인이 보고 싶은 오페라’ 1위에 선정되기도 했다. 사람들이 푸치니에, ‘투란도트’에 그토록 매료되는 요인은 무엇일까.
당대 오페라계의 제왕이었던 푸치니가 확고한 권위로 모든 이탈리아인의 칭송 속에 이 만년의 대작을 완성했을 것이라고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 다르다. 푸치니는 평생 평론가들의 끊임없는 비판에 시달렸다. 그 상황은 음악학자 알렉산드라 윌슨의 책 ‘푸치니 문제(The Puccini Problem·2009년)’에 상세히 설명돼 있다.
책에 따르면 푸치니에 대한 비판은 한 방향에서 온 것이 아니었다. ‘미래파’ 예술가들에게 경도된 비평가들은 그의 작법이 의고적이고 그가 다루는 소재들은 ‘눈물 짜는’ 값싼 감상주의에 지나지 않는다고 공격했다. 반면 전통주의자들은 그가 이탈리아 성악 전통을 무시하고 바그너를 비롯한 ‘알프스 너머’의 조류에 경도됐다고 생각했다. 특히 평론가 토레프란카는 푸치니의 음악이 ‘지적으로 파산상태이고 이탈리아의 예술을 모독하는’ 것이라며 독설을 퍼부었다. 성경에 나오는 솔로몬의 판결 일화처럼, 비평가들은 반대의 방향에서 그의 작품을 잡아당기며 괴롭혔던 것이다.
푸치니의 반응은 어땠을까. 둘 다 따를 수는 없는, ‘비평을 위한 비평’이라며 무시했을까. 오히려 그는 양쪽의 요구를 처절할 정도로 고민하고 진지하게 수용하려 했다. 최신의 조류를 수용하라는 요구를 받아들여 ‘외투’처럼 새로운 수법을 담은 작품을 내놓았고 전통을 존중하라는 요구를 받아들여 ‘자니 스키키’처럼 의고적 소재를 개성적으로 다룬 작품을 썼다. 나아가 ‘투란도트’에서는 이를 종합한 ‘합(合)의 명제’를 지향했다. 이탈리아 전통 희극 형식을 극에 도입하는 한편 스트라빈스키 풍의 혁신적 관현악법을 가미했다. 여주인공은 아예 ‘미래파적’인 투란도트 공주와 ‘전통 서정극적’인 시녀 류 두 사람을 내세웠다. 이는 세대를 뛰어넘는 청중의 공감으로 이어졌다. ‘성가신’ 비평이 푸치니를 한 걸음 나아가게 한 것이다.
본보 12일자 A28면 ‘류인균의 우울증 이기기’ 칼럼에는 평단의 혹평을 받고 자살을 생각하다가 이를 극복한 피아니스트 루빈스타인과 작곡가 라흐마니노프의 이야기가 나왔다. 혹평이 없었다면 두 사람은 순조롭게 대예술가로 성장할 수 있었을까. 오히려 이를 딛고 극복한 순간 두 사람은 철통같은 개성과 견고한 기법을 지닌 거장으로 다시 태어났을 것이다.
우리 문화계를 돌아본다. ‘비평의 위기’는 어제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2000년대 초반 문학계의 주요 이슈 중 하나도 ‘주례사 비평 극복’이었다. 미술계에서는 이해할 수 없는 ‘암호문 비평’이 문제로 지적됐다. 모두 극복됐다는 얘기는 들리지 않은 채 논란 자체가 희미해지고 있다.
최근에는 새로운 문제가 등장했다. ‘예술 저널리즘’이 위축되고 그 상당 부분을 일반 감상자들의 인터넷 블로그나 카페가 차지하게 된 것이다. 이들이 쓰는 비평적 감상문에는 놀랄 만한 수준에 달하는 것도 많다. 그러나 이들에게 권위를 부여할 상위(上位)의 권위는 찾을 수 없다. 잡문과 진지한 비평의 경계가 실종된 채 글의 수준이 높아도 자신들만의 동아리에서 공유될 뿐, 비평의 대상에게는 좀처럼 다가가지 못한다. 대중과도, 시대의 조류와도 호흡하지 않는 ‘내 식대로’ 예술가가 많아질 수밖에 없는 환경이다.
훗날 21세기 초반의 한국 예술계를 가리켜 “많은 스타가 탄생한 시대”라고 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많은 명작이 대중과 호흡하며 탄생한 시대”라고 하지는 않을 듯하다. 숱한 걸작을 낳았던 역사상의 여러 문화권처럼 예술가와 비평이 건강한 생태계를 형성했는가. 그 점을 살펴보면 예견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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