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돈방석 前官, 표절 논문, 부정 입학… 지도층의 민낯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1일 03시 00분


노비 출신인 장영실을 발탁해 측우기와 자격루를 만들었던 세종대왕의 인재관은 뚜렷했다. 조선왕조실록을 보면 세종은 인재의 첫 번째 요건으로 ‘몸가짐이 방정하고 굳은 절개와 염치가 있는 자’를 꼽았다. 인재를 뽑을 때 실력 이전에 인성과 덕목을 중시했던 것이다. 박근혜 정부를 이끌어갈 초대 내각과 대통령비서실 인선을 보면 우리나라에서 지도층이라는 사람들이 과연 어떤 몸가짐으로 살아왔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차기 정부의 장관 후보자 중에는 공직을 떠난 뒤 관련 민간기업에 취업해 재산을 크게 불린 사람이 많다. 검찰 출신인 황교안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법무법인에 취업해 다달이 1억 원의 수입을 올렸다. 육군 대장 출신인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는 무기중개업체 고문으로 거액의 연봉을 받았다. 고위 공직자로 있던 사람이 관련 업계에 나가 큰돈을 버는 현실을 놓고 단순히 능력과 경험을 높이 샀기 때문이라고 믿는 국민은 많지 않을 것이다.

더구나 특정 회사를 대변하던 사람이 다시 해당 업무를 공정하게 관리해야 할 공직에 버젓이 나오는 처신은 후보자들 스스로 삼갔어야 옳다. 새누리당 정의화 의원은 어제 “전관예우(前官禮遇)를 통해 천문학적 월급을 받은 분들이 출세까지 하겠다고 하니 우리 국민에게 굉장한 위화감을 줄 수 있다”며 “스스로 다시 고액 봉급자로 돌아가라”고 질타했다. 이 말에 고개를 끄덕일 국민이 적지 않을 듯하다.

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 내정자의 논문 표절은 다른 사람의 논문을 거의 그대로 복사해놓은 수준이다. 그가 논문을 베껴 박사학위를 딴 데 대해 “저는 전문적으로 연구하는 학자가 아니고…”라고 해명한 것은 “공부가 본업이 아닌데 바쁜 와중에 학위를 땄으니 봐 달라”는 식이어서 더 기가 차다. 힘 있는 정치인에게 허술하게 학위를 내주고 이제 와서 윤리 문제를 조사할 수 있다는 해당 대학의 태도도 수긍하기 어렵다. 후보자나 후보자의 아들 가운데 신체에 문제가 있어 병역을 면제받은 사람은 부지기수지만 이 때문에 사회생활에 지장을 받는다는 말은 들리지 않는다.

사회 지도층과 부유층 학부모 21명은 허위 국적을 취득해 자녀를 외국인학교에 부정입학시킨 혐의로 19일 유죄판결을 받았다. 재벌가 며느리, 상장회사 대표, 의사 등이 브로커에게 4000만∼1억5000만 원을 주어 과테말라 니카라과 등의 국적을 허위로 취득했다. 현대가(家) 며느리 노현정 전 아나운서와 전두환 전 대통령의 며느리인 탤런트 박상아 씨도 자녀의 외국인학교 부정입학 혐의로 다음 달 검찰 수사를 받는다. 자녀를 잘 교육시키고 싶은 부모의 마음을 이해 못하는바 아니지만 노블레스 오블리주(지도층의 도덕적 책무)를 망각해서는 안 된다.
#표절 논문#부정 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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