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고미석]女대통령 시대의 여성 임원

  • Array
  • 입력 2013년 2월 22일 03시 00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현대사회를 영원히 바꿔놓은 주인공.’ 뉴욕타임스는 여성운동가 베티 프리던(1921∼2006)이 타계했을 때 이렇게 추모했다. 명문여대 스미스칼리지를 최우등으로 졸업한 프리던은 뉴욕의 신문사에서 일하다 26세 때 결혼했다. 둘째아이를 가져 회사에 출산휴가를 요청했으나 해고당하면서 직장생활을 접어야 했다. 그가 전형적인 백인 중산층 주부의 삶에서 이탈한 것은 42세 때인 1963년. 자신과 비슷한 처지의 동창생들, 생활은 풍요로운데 우울증에 시달리는 전업주부들의 삶을 추적한 책 ‘여성의 신비’를 펴낸 것이 계기였다. 이 책은 260만 부 이상 팔리면서 여권운동의 봇물을 터뜨린 기폭제가 됐다.

▷올해로 ‘여성의 신비’ 출판 50주년을 맞아 미국에서 ‘프리던 다시 보기’ 열풍이 불고 있다. 그는 이 책에서 남성 중심 사회의 교육과 정책이 여성을 종속적 지위에만 붙들어 매놓고 사회 참여를 봉쇄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교외의 중산층 동네를 ‘편안한 포로수용소’라고 표현했다. 이런 자극적 문구로 출간 당시 ‘19∼20세기 통틀어 가장 해로운 책’이란 비난을 받았으나 지금은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책’ 중 하나로 꼽힌다. 성 평등 실현과 여성의 진정한 해방을 촉구한 저자의 주장은 지금도 유효하다.

▷미국 경제지 ‘포천’이 선정한 500대 기업의 여성 임원 비율이 14.1%라는 통계가 보여주듯 일하는 여성들에게 유리천장은 여전히 존재한다. 한국은 훨씬 열악하다. 6000명이나 되는 100대 기업의 임원 중 여성은 올해 겨우 100명(총수와 소유주 일가 제외)을 넘어섰다. 얼마 전 국회에선 공공기관 여성 임원 비율을 3년 내 15%, 5년 내 30%로 높이는 획기적인 법안을 내놨다. 지난해 말 기준 공공기관 149곳 중 임원 후보군에 해당하는 1급 여성 간부 비율은 2.6%(80명)에 불과해 실현까지는 갈 길이 멀다. 하지만 어제 새 정부의 국정과제로 공직의 여성 관리자 비율을 2017년까지 15%로 확대하는 방안도 발표해 여성 임원을 늘리려는 시도는 계속될 듯하다.

▷공기업에서 일하는 한 여성 임원의 말은 새겨볼 만하다. “말단사원으로 입사해 경력을 쌓아가며 임원으로 승진하는 여성이 늘어나야지 단순히 숫자 채우기여선 안 된다.” 생색내기식의 무리한 추진보다 차근차근 늘려가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얘기다. 며칠 후 대한민국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 취임한다. 외국 전문가들은 “한 세기 전만 해도 남성 우월주의 전통이 지배하던 한국에서 미국도 해내지 못한 여성 대통령 선출이란 위업을 달성했다”고 평가한다. 대통령에 이어 민간기업과 공공부문도 우리나라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모범이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한다.

고미석 논설위원 mskoh119@donga.com
#여성대통령#베티 프리던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