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다. 나는 아직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익숙지 않다. 강물은 여전히 우리를 위해 눈빛을 열고 매일 밝힌다지만 시들어가는 날은 고개 숙인 채 길 잃고 헤매기만 하느니. 가난한 마음이란 어떤 삶인지, 따뜻한 삶이란 무슨 뜻인지, 나는 모두 익숙지 않다. 죽어가는 친구의 울음도 전혀 익숙지 않다. 친구의 재 가루를 뿌리는 침몰하는 내 육신의 아픔도, 눈물도, 외진 곳의 이명도 익숙지 않다. 어느 빈 땅에 벗고 나서야 세상의 만사가 환히 보이고 웃고 포기하는 일이 편안해질까.
태어나기를, 불안한 존재가 있다. 그의 자아는 늘 덜그럭거린다. 세상과 불화한다기보다는 어색한 영혼. 서른이 넘고 마흔이 넘고, 예순이 넘어도 그는 세상을 대하는 게 수월치 않다. 무슨 일을 해도 편치가 않고 어떤 자리에서도 어울릴 줄 모른다. 늘 그래왔다. 평생 그럴 것이다. 뭘 배우는 것도 힘겹고 살아가는 요령도 없고, 그러니 당최 할 줄 아는 게 없고 매너도 서툴다. 가령 그는 밥을 잘 지을 줄 모르는 정도가 아니라 제대로 먹을 줄도 모른다. 먹는 모양도 어딘지 어색하고 ‘폼’이 안 난다. 매사 어설프고, 감정도 겉돈다. 행복도 익숙지 않고 불행도 익숙지 않고, 그래서 상갓집에서도 슬픔에 같이 젖어들지 못하고. 요컨대 화자는 자기 자신조차 낯설고 인간 세상과 맞지 않는 외로운 존재다. 그 외로움조차 겉돌고, 익숙지 않다! 이 시의 화자가 시인 자신이라면 좀 놀랍다. 내가 안다고 생각한 마종기 선생님은… 잘 모르겠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