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정부가 어제 열린 ‘다케시마(竹島·독도의 일본식 이름)의 날’에 시마지리 아이코 내각부 정무관(차관급·재선의원)을 정부 대표로 파견했다. 시마네 현이 2006년부터 치르던 자체 행사에 정부 대표가 참석한 것은 처음이다. 우리 정부가 ‘다케시마의 날’ 철폐와 정부 대표 파견을 중지하라고 요구했지만 일본 정부는 거부했다. 외교통상부가 일본의 정부 대표 파견에 유감을 표시하고 강력히 항의한 것은 당연하다.
지난해 말부터 이번 ‘다케시마의 날’ 행사는 한일 양국의 초미의 관심사였다. 아베 신조 총리가 작년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총리가 되면 ‘다케시마의 날’을 정부 중앙 행사로 격상하겠다”고 공언한 데다 그날이 한국의 신임 대통령 취임 사흘을 앞둔 미묘한 시점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한국 정부는 국가와 민간 채널을 총동원해 “만약 ‘다케시마의 날’을 정부 행사로 치를 경우 한일 관계는 파국을 맞을 것”이라고 수차례 경고 메시지를 보냈다.
일본 정부는 한국을 배려해 시마네 현이 요구한 장관급은 보내지 않고 차관급을 보냈다고 밝혔다. 그러나 내년 ‘다케시마의 날’ 행사에 총리나 장관급이 참석하면 그땐 뭐라고 설명할 것인가. 우리는 참석자의 급을 문제 삼는 게 아니다. 정부 대표의 참석은 일본이 지금껏 했던 과거사 반성의 진정성을 의심케 하는 행위다. 앞으로의 한일관계에 찬물을 끼얹는 걸림돌이기에 중지를 요구했던 것이다. 시마지리 정무관이 행사에서 “다케시마는 일본 고유의 영토주권에 관한 문제”라고 한 게 우리의 우려를 뒷받침한다.
일본은 독도의 시마네 현 편입은 국제법상 전혀 하자가 없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독도를 시마네 현에 편입한 1905년은 대한제국이 사실상 일본의 지배하에 들어가 있을 때였다. 시마네 현이 독도 편입 100년이 되던 2005년에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했지만 그 100년 전은 한국에는 수모와 치욕의 시절이다. 독도는 한국인에겐 그저 작은 섬이 아니라 고통스러운 식민지배의 가슴 아픈 상징이며, 잊고 싶은 역사의 서막에 등장하는 잊지 못할 연인(戀人) 같은 존재다. 일본이 그 점을 간과하는 한 독도 문제는 더욱 악화할 수밖에 없다.
한일 양국은 복잡다기한 현안을 안고 있다. 북한의 핵실험과 한중일 자유무역협정(FTA), 침체한 역내 경제와 중국의 급부상, 미국의 아시아 회귀에 따라 국제사회에서 공동으로 대처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런 시점에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법치의 가치를 공유하는 두 나라가 과거사에 발목이 잡혀 등을 돌리게 된다면 모두에 손해다.
모레 한국에선 박근혜 정부가 출범한다. 일본은 지난해 8월 이명박 대통령의 독도 방문 이후 악화한 한일관계를 박 신임 대통령이 회복시켜줄 것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분위기에서는 일본에 손을 내밀기가 어렵다. 한국의 일본에 대한 정서가 예전보다는 많이 유연해졌다고는 하나, 독도 문제만큼은 대통령도 운신의 폭이 넓지 않다. 더구나 며칠 있으면 3·1절이다. 일본은 왜 현명한 전략적 정무적 판단을 하지 않는 것인지 답답하다. 아베 총리는 이번 행사로 국내에서 약간의 점수를 땄을지 모르지만 명백히 소탐대실(小貪大失)이다.
국가는 영속(永續)을 전제로 존재한다. 한 국가의 영광과 과오는 함께 승계된다. 국가가 저지른 예전의 잘못을 후대(後代)가 책임져야 하는 이유다. 요즘 일본은 그런 역사인식이 부족하고, 그를 일깨울 리더십도 흔들리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