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찰은 지난해 대통령선거 때 “노무현 전 대통령이 제2차 남북정상회담에서 ‘NLL(서해 북방한계선)을 주장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고 폭로해 민주통합당에 의해 고발된 정문헌 새누리당 의원에게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검찰 관계자는 “국가정보원이 검찰에 제출한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발췌본을 열람한 결과 정 의원의 주장을 거짓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밝혔다. 당시 대화록은 국가기밀로 지정돼 일반인은 열람이 불가능하다. 민주당 측은 “검찰이 권력의 시녀를 자처했다”며 반발하고 있다.
당시 정 의원은 “노 전 대통령이 김정일에게 ‘NLL 때문에 골치 아프다. 미국이 땅따먹기를 하려고 제멋대로 그은 선이니까. 남측은 앞으로 NLL을 주장하지 않을 것이며 공동어로 활동을 하면 NLL 문제는 자연스럽게 사라질 것’이라고 구두 약속을 해줬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검찰이 “기본적 취지가 일치한다”는 결론을 내린 것은 정 의원의 폭로가 실제 대화록에 나와 있는 내용과 전체적으로 부합한다는 점을 인정한 것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장을 지낸 이종찬 씨는 어제 채널A에 출연해 “팩트(사실)에 관한 문제인데 검찰이 정치적으로 해석하거나 거짓말을 했을 리는 없다고 본다”고 말했다.
노 전 대통령은 남북정상회담을 전후해 NLL에 대해 수차례 부정적으로 언급한 바 있다. 그는 “NLL을 영토선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국민을 오도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런 인식 자체도 정상은 아니지만, 영토 보전이 헌법상 책무인 대통령이 호시탐탐 NLL 도발을 획책하는 북한의 최고지도자 앞에서 그런 발언을 했다면 보통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북한이 NLL에 대해 “남측이 불법적인 NLL을 유지하려고 하는 것은 남북 정상 간 약속을 지키지 않는 일”이라고 주장하는 것도 노 전 대통령의 발언에 근거한 것으로 판단된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 시절 대통령비서관을 지낸 박선원 씨는 “노 전 대통령이 NLL 포기 발언을 했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다. 오히려 양보 불가 입장을 분명히 했고, 김정일 위원장으로부터 포기를 받아냈다”며 정반대의 주장을 폈다. 정상회담 석상에서 있었던 발언을 놓고 180도 상반된 말이 나오니 기가 막힐 노릇이다. 노무현 청와대에서 만든 정상회담 대화록과 국정원이 자체적으로 만든 대화록 간에 차이라도 있다는 말인가.
NLL 문제는 국가안보와 직결되어 있다. 기왕에 노 전 대통령의 발언이 논란이 되고 있는 만큼 국민적 의혹을 풀기 위해 실체적 진실을 확인하는 일이 필요하다. 대통령기록물로 지정돼 국가기록원에 넘겨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과 국정원이 보관 중인 대화록을 열람하도록 허가한다면 누구 말이 맞는지 금방 진위(眞僞)를 가릴 수 있다. 대화록의 전면 공개가 어렵다면 국회에서 여야 결의로 핵심 관계자들이 NLL과 관련된 부분만 열람한 뒤 사실 여부를 확인하고 국민에게 알리는 방법도 있을 것이다. 검찰의 무혐의 판단까지 나온 마당에 민주당이 노 전 대통령의 NLL 실언(失言)을 계속 감싸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