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7년 개봉된 영화 ‘페이스오프(Face off)’에는 안면 이식수술이 등장한다. 경찰(존 트래볼타)이 의식을 잃은 범죄자(니컬러스 케이지)의 얼굴을 이식받고 범죄조직에 잠입한다. 페이스오프는 ‘아이스하키에서 퍽을 가운데 놓고 경기를 시작한다’ 혹은 ‘대결을 준비한다’는 뜻이다. 이 영화가 흥행한 이후에는 안면 이식수술을 통한 ‘얼굴 교환’을 상징하는 말로 자주 쓰인다.
▷영화적 상상력이 현실이 될 수 있을까. 의사들의 대답은 ‘노(No)’이다. 영화처럼 얼굴 조직 전체를 떼어내 옮기면 민감한 얼굴 세포가 거부반응을 일으켜 피부가 괴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2005년 프랑스의 한 병원이 개에 물려 코와 입이 뜯겨나간 여성에게 뇌사자의 얼굴 조직을 이식하는 수술을 한 적이 있으나 아직 갈 길이 멀다. 서울 강남의 성형외과들이 광고하는 ‘페이스오프 성형’도 영화와 달리 눈, 코, 얼굴형을 조금씩 뜯어 고쳐 전체 인상을 바꾸는 종합 성형수술을 과대 포장한 것이다.
▷사람들은 눈 코 입 사이의 거리와 비율, 머리카락 등의 이미지와 표정 정보를 조합해 다른 사람의 얼굴을 알아본다. 사람의 얼굴 인식 능력은 침팬지보다 떨어진다. 하루 전 술자리에서 만난 사람을 전혀 다른 분위기에서 마주치면 알아보지 못할 수 있다. TV에서 본 유명 인사를 거리에서 만나면 다른 사람으로 착각하는 것은 흔한 일이다. 범죄를 목격한 사람이 범죄자를 잘못 짚기도 한다.
▷이런 허점을 노리고 뒤가 구린 도망자들이 경찰의 추적을 따돌리기 위해 성형을 하는 사례가 일어난다. 20일 경찰에 체포된 47억 원 횡령 용의자인 윤모 씨(34)는 수배 전단과 얼굴이 너무 달라 경찰을 깜짝 놀라게 했다. 코를 높이고 눈을 키우는 성형 수술을 받았다는데 지인이 아니면 몰라볼 정도였다. 오죽했으면 경찰이 앞으로 성형외과에 수배 전단을 붙이는 방안까지 고민할까. 홍채 귀 등의 ‘신체 정보’나 손가락 움직임, 걷는 모습과 같은 ‘행동 정보’를 활용하는 보안기술로 ‘페이스오프 범죄자’를 잡아내는 방법이 있기는 하다. 하지만 자녀를 위한 국적 쇼핑, 전관예우, 논문 표절 등 최근 물의를 빚고 있는 사회지도층의 ‘안면 몰수’를 적발하는 일은 첨단 과학도 잘 통하지 않는다. 이들은 아예 두 개의 얼굴을 지니고 있는 듯하다.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