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김태현]제갈공명을 찾습니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3일 03시 00분


김태현 중앙대 교수 국가대전략연구소장
김태현 중앙대 교수 국가대전략연구소장
삼국지에 나오는 제갈공명은 탁월한 병법가, 전술가였다. 데뷔전이었던 신야성 전투에서 단 1만 명의 병력으로 조조의 10만 대군을 물리치는 기병의 묘를 발휘했다. 이후 수많은 대소 전투에서 거의 패한 적이 없었다. 조조의 백만 대군이 쳐내려오자 내키지 않아 하는 오나라를 어르고 달래 유비와 손권의 연합을 이뤄냈다. 또 온갖 전술을 망라해 적벽대전을 역사에 길이 남을 승리로 이끌었다. 이후 오나라를 따돌리고 형주를 차지해 마침내 유비가 딛고 일어날 발판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그는 대전략가였다. 처음부터 삼국정립의 대계를 구상했다. 형주를 기반으로 파촉을 공략해 결국 유비가 촉나라의 황제가 되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러나 그는 스스로 황제가 될 천운이 없었다. 수명이 짧았다. 하늘에 기원하는 제를 지냈지만 예기치 않은 사고로 무산됐다. 또 타고난 카리스마가 없어 사람을 모으지 못했다. 그의 사후 촉나라는 변변한 장수가 없었다. 그런 약점을 스스로 알아 제위를 물려주겠다는 유비의 청을 거절했으니 그것만으로도 대단한 사람이었다.

민주국가에서 대통령이 되려면 역시 그런 천운이 있어야 한다. 사람을 끄는 카리스마와 시운을 잘 타고나야 한다. 물론 능력도 있어야 하지만 천운이 선결 조건이다. 지난해 12월 대선 결과에 아직도 불만인 사람이 있을 수도 있겠지만, 그들도 며칠 후면 취임할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에게 그런 천운이 있음을 부인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성공한 대통령이 되려면 천운만으로는 부족하다. 사람을 잘 써야 한다. 유비가 천운을 타고났다 하더라도 제갈공명이 없었더라면 촉의 황제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제갈공명을 만난 것도 운이라 할 수 있겠지만, 그를 알아보고 삼고초려 끝에 기용해 만사를 믿고 맡긴 것은 유비의 능력이었다.

고학생에서 대기업 사장, 서울시장을 거쳐 결국 국가원수가 된 이명박 대통령도 천운을 타고났다고 할 수 있다. 그가 과연 성공한 대통령으로 기억될 수 있을까. 세계 금융위기라는 어려운 환경에서 경제를 관리해 국가신용등급을 높이고, G20 정상회의, 핵안보 정상회의 등 큰 행사를 성공적으로 개최해 국격을 높이는 등 기억할 만한 치적은 남겼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안보, 특히 대북안보 분야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기 어려울 것 같다. 2009년 5월 제2차 핵실험,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 11월 연평도 포격, 2012년 12월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 그리고 결정적으로 퇴임을 얼마 안 남기고 벌어진 제3차 핵실험으로 한반도 안보상황은 최악이 됐다.

왜 그렇게 됐는가. 기형적인 부처 운영과 현대 군사력의 효용에 대한 이해 부족 때문이다. 북한 문제를 다루는 부처에는 국방부, 통일부, 외교통상부, 국가정보원이 있다. 국정원의 업무는 정보와 공작인데 정보는 지원하는 역할이고 공작으로는 큰일을 이루는 데 한계가 있다. 외교부 역할도 부차적이다.

결국 북한과의 대화와 협상을 담당하는 통일부와 북한의 침공을 억제하고 유사시 격퇴하는 국방부가 핵심 부처다. 그런데 과거 10년 동안 북한에 ‘퍼주기’만 했다고 매도된 통일부는 철저히 무력화됐다. 부처 자체가 사라질 뻔하다가 간신히 명맥을 유지했지만 한 일이 없었다.

남은 것은 국방부인데 오늘날 군사력처럼 애매한 존재가 없다. 현대무기의 가공할 파괴력을 감안할 때 군사력의 역할은 무엇보다 전쟁 억지에 있다. 억지가 성공하면 군사력은 쓸 일이 없다. 오늘날 군사력은 사용되지 않아야 그 기능을 다하는 희한한 존재가 됐다.

그 국방부가 대북정책을 주도한 결과 이렇게 됐다. 국방부의 역할은 전쟁을 예비함으로써 전쟁을 막는 것이다. 막상 북한의 도발에 맞닥뜨렸을 때 국방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전쟁이다. 전쟁을 결정하는 것은 국방부가 아니니 결국 국방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전쟁이 나면 박살을 내겠다고 협박하는 것밖에 없다.

북한의 도발이 잦으니 협박의 빈도와 강도가 높아졌다. 그래도 국내외 정세로 말미암아 쉽게 전쟁을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그래서 협박은 허풍으로밖에 들리지 않는다. 세계 7위라는 우리 군사력이 무력화됐다. 아니란 것을 보이려면 전쟁을 하는 수밖에 없으니 한반도 안보상황이 최악이라는 것이다.

국방부 잘못이 아니다. 국방부는 할 일, 할 수 있는 일을 했다. 문제는 큰 그림 속에서 흐름을 읽고 전후좌우를 살펴 국방, 통일, 외교, 정보 등 국가자원을 적시적소에 투여할 줄 아는 군사(軍師), 곧 대전략가의 부재에 있다.

제도의 문제이자 사람의 문제다. 부처를 이끌고 조정할 수 있는 권한이 있는 자리가 필요하다. 박근혜 정부가 청와대에 국가안보실을 설치한 것은 잘한 일이다. 그래도 사람이 더 중요하다. 제갈공명과 같은 대전략가가 필요하다.

김태현 중앙대 교수 국가대전략연구소장
#대통령#북한#안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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