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박근혜 대통령 취임에 부쳐]100년을 내다봐야 5년이 성공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6일 03시 00분


박근혜 제18대 대통령이 어제 취임식을 갖고 5년 임기의 첫발을 내디뎠다.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새 정부는 ‘경제 부흥’ ‘국민 행복’ ‘문화 융성’을 통해 새로운 희망의 시대를 열어 나가겠다”고 국정의 3대 목표를 제시했다. “국민과 함께 ‘제2의 한강의 기적’을 만드는 위대한 도전에 나서겠다”는 의지도 피력했다.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밝힌 초심을 잊지 말고 임기 5년을 넘어 미래 100년을 책임진다는 각오로 대한민국을 이끌어주길 바란다.

공자는 “정치에서 정(政)의 의미는 곧 정(正)이다. 지도자가 자신을 바르게(正己) 할 수 있어야 능히 남을 바르게(正人)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기(正己)는 수신(修身)을, 정인(正人)은 치국(治國)을 의미한다. 정치와 지도자의 요체를 명료하게 제시한 금언(金言)이다.

자신을 바르게 한다는 것은 부도덕하거나 불법적인 일을 저지르지 않고, 이해타산에 얽매이지 않으며, 공정하게 일을 처리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은 본인은 물론이고 가족 친인척 측근 등의 관리도 철저히 해 재임 중 국민을 실망시키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

최고지도자로서 국가를 바로 세울 책무도 있다. 박 대통령은 “깨끗하고 투명하고 유능한 정부를 만들어 정부에 대한 불신을 씻어 내겠다”고 말했다. 정치인과 공직자의 범법과 부정부패는 엄히 다스리고 정치권이 약속한 정치개혁도 빨리 실행하도록 독려해야 한다.

경제는 민생을 위해 더없이 중요한 국정 과제다. 나라 안팎의 경제 환경은 썩 좋지 않다. 일본이 엔화 약세 정책으로 세계시장을 공략하고 미국은 유럽연합(EU)과 자유무역협정(FTA)을 맺어 교역의 담벼락을 허문다는 세계전략을 내놓고 있다. 새 정부가 경제를 어떻게 운용하느냐에 따라 향후 한국 경제는 선진국으로 나아가느냐, 국민소득 2만 달러대에 주저앉느냐의 기로에 설 것이다.

박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강조한 ‘제2의 한강의 기적’을 이루기 위해선 무엇보다 부가가치가 높고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큰 고급 서비스업, 즉 의료 관광 금융 교육 법률 분야에 대한 규제를 개혁 추동력이 강한 정권 초기에 과감하게 풀어야 한다.

정보통신기술(ICT) 문화 콘텐츠 서비스 산업에 투자를 확대해 새로운 시장과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창조경제론’은 방향이 옳다. 특히 ICT는 농업부터 학습 의료 에너지 등 전 산업의 생산성을 높일 핵심 산업이다. 정규직의 기득권 양보로 비정규직과의 차별도 줄이면서 기업 부담도 덜어줘야 한다.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경제민주화를 거듭 강조했다. 최근 새 정부의 경제민주화에 대한 의지가 후퇴한 게 아니냐는 지적을 의식한 것으로 보인다. 대기업이 중소기업 몫을 가로채는 불공정 행위나, 사회적 지탄을 받을 만한 대기업과 총수의 비리는 엄단해야 한다. 그러나 경제민주화가 반(反)기업 정서에 편승해 ‘대기업 때리기’로 변질돼선 안 된다.

양극화는 사회통합의 최대 장애물이다. 1000조 원에 이르는 가계부채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최고의 자살률, 세계에서 가장 빠른 저출산 고령화는 시한폭탄이다. 취약계층에 기초생활을 보장하고, 질병 실업 고령 등 사회적 위험으로부터 개개인을 보호하는 사회안전망을 촘촘하게 엮어야 한다.

문제는 복지 재원(財源)이다. 대선 공약을 다 이행하려면 5년 동안 135조 원이라는 엄청난 돈이 필요하다. 공약 이행에 매달려 과도한 복지로 재정건전성을 해치고 성장 불씨를 꺼뜨린다면 후대(後代)에 죄를 짓는 일이다. 돈이 많이 드는 ‘퍼주는 복지’가 아니라 ‘일하는 복지’로 물줄기를 틀어 복지와 성장이 함께 굴러가도록 하고, 복지 전달체계의 효율성과 투명성도 높여야 한다.

임신이 걱정이 아니라 축복이 되도록 출산 지원을 강화하고 안심하고 양육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지 않으면 저출산 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 아이 낳고 싶은 나라가 돼야 여성 취업도 늘고 여성의 지위도 올라가 최초의 여성 대통령에 값할 수 있을 것이다.

동북아 끝자락의 가난한 나라가 세계 10대 경제대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허리띠를 졸라매고 자녀를 교육시킨 부모세대의 뜨거운 교육열 덕분이다. 21세기 지식정보화시대에는 과거의 인재들과 차원이 다른 창의적이고 융합적인 인재가 필요하다. 박 대통령이 취임사에서 “모든 학생들의 잠재력을 찾아내는 일이 국가발전의 원동력이 될 것”이라고 말한 대로 개인의 소질과 능력을 꽃피울 수 있는 교육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재양성의 구체적인 청사진을 빨리 제시해야 한다. 학벌이 아닌 능력 위주의 사회를 정착시키는 일도 중요하다. 모든 국민이 출발선에 상관없이 자신의 꿈을 펼칠 수 있도록 공교육과 평생 교육의 기회를 늘리고, 계층 상승을 돕는 ‘기회의 사다리’도 복원해야 한다.

박 대통령은 3대 국정목표 중 하나로 ‘문화 융성’을 명시해 ‘문화대통령’이 되고자 하는 의지를 피력했다. 우리 민족의 유무형 자산인 문화는 일자리를 만들어 내는 차세대 성장 동력으로 각광받기 시작했다. 한류가 그 좋은 본보기다. 박 대통령은 정신문화의 가치를 북돋우는 일에도 적극 나서야 한다. 도서관 확충, 책과 신문 읽는 문화 조성 등 문화의 기초를 다지는 일이 시급하다.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는 일은 국가의 가장 기본적 책무다. 국경이 아무리 튼튼해도 일상이 불안하면 국민은 행복하지 않다. 박 대통령은 성폭력 가정폭력 불량식품 학교폭력을 4대 사회악으로 규정하고 척결을 다짐했다. 경찰 2만 명 증원 등을 약속한 만큼 빨리 이행해 치안의 질을 높여야 한다.

박 대통령은 “힘이 아닌 공정한 법이 실현되는 사회, 사회적 약자에게 법이 정의로운 방패가 되어주는 사회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법 집행의 정점에 있는 검찰의 신뢰는 지난 정권에서 바닥으로 떨어졌다. 이미 힘이 빠진 대검 중앙수사부의 폐지만으로 부족하다. 특별감찰관 신설과 상설특검제의 구체안을 조속히 마련해야 한다.

환경은 글로벌 화두다. 지속가능한 환경에 대한 투자는 한반도를 넘어 70억 인류가 살고 있는 지구를 온전하게 후손들에게 물려주기 위한 전 지구적 과제라는 인식과 공감대가 필요하다. 전임 이명박 대통령은 녹색 성장의 이슈를 선점하고 밑그림을 제시했다. 박근혜 정부는 이를 착근(着根)시켜 새로운 경제 성장의 모델로 키울 책임이 있다. 기후변화로 인한 재난방지 시스템을 보다 정교하게 구축하는 것도 ‘안전 사회’를 위해 필요한 과제다.

박 대통령은 대통합의 기치를 내걸고 당선됐다. 정치적 이념적 분열이 사회 발전의 걸림돌이 되는 수준에 이르렀다. 박 대통령이 아버지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의 긴급조치와 부마항쟁 피해자의 명예를 회복하고 손해를 보상하는 일은 역사적 상처를 치유하고 통합의 길을 열려는 것으로 의의가 크다.

국민 일부가 아니라 국민 모두가 행복한 나라를 만들려면 사회적 약자부터 배려해야 한다. 정부가 솔선해서 여성 고졸자 장애인 등을 공직에 채용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

안보 외교 환경은 그 어느 때보다 급박하다. 박 대통령은 취임사에서 “국민의 생명과 대한민국의 안전을 위협하는 그 어떤 행위도 용납하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또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로 한민족 모두가 보다 풍요롭고 자유롭게 생활하는 행복한 통일시대의 기반을 만들겠다”면서 “확실한 억지력을 바탕으로 남북 간에 신뢰를 쌓기 위해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가겠다”는 뜻도 밝혔다. 북핵 불용을 천명하면서도 대화의 창은 열어둔 것으로 풀이된다. 북한이 새 정부를 시험하겠다는 무모함을 버리고 생존과 평화공존의 길로 나아가도록 대화와 억제 정책을 병행해야 한다.

한미동맹은 계속 강화해야 할 핵심적인 안보외교 자산이다. 새 정부는 한미동맹을 중국에 대한 견제와 미국에 대한 일방적 의존 수단이 아니라 상호호혜적인 동맹으로 진화시켜야 한다. 중국은 경제적으로는 기회의 땅이지만 북한과 역사 문제에서는 갈등이 여전하다. 동북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서도 중국과의 신뢰 구축이 시급하다.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가치를 공유하는 한국과 일본이 소원해지면 동북아의 안보 불안과 경제의 그늘은 짙어진다. 과거사와 국익을 분리하는 지혜가 필요하다.

박 대통령은 눈앞의 현안과 먼 곳의 목표를 동시에 보는 ‘다(多)초점 외교안보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격변의 시대에 우리의 운명을 남의 손에 맡기지 않으려면 국익을 극대화하고, 양자관계와 다자관계를 동시에 아우르는 포괄적 전략과 시각도 갖춰야 한다.

박 대통령은 어제부터 ‘구중심처(九重深處)’로 불리는 청와대로 들어갔다. 대통령이 측근들에게만 둘러싸여 듣기 좋은 말만 들으면 판단이 흐려질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쓴소리’에도 귀를 기울여 국민과 유리되지 말아야 할 것이다. 야권과의 대화와 타협, 공존과 상생에도 앞장서 독선적, 권위적, 불통 정부라는 말이 더는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한다.

역사는 시운(時運)과 인간의 합작품이다. 박 대통령이 현재 대한민국이 갖고 있는 모든 역량과 자산을 결집시키는 리더십으로 풍요롭고, 튼튼하고, 존경받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주길 기대한다.
#박근혜#취임식#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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