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스러운 악녀, 아름다운 여전사, 섹시 여신! 아르헨티나 태생의 레오노르 피니의 자화상을 보는 순간 떠오르는 단어다. 한눈에도 그녀는 잠자는 숲 속의 공주나 백마 탄 왕자를 기다리는 신데렐라형이 아니다.
강렬한 눈빛언어, 화사한 꽃으로 장식한 빨강 머리, 우아하면서도 당당한 몸짓은 미모와 재능이 뛰어나고 개성도 강하며 열정적인 예술가였다는 정보를 알려준다.
피니는 자유분방한 삶, 돌출 언행, 화려한 연애편력, 도발적인 패션으로 초현실주의 예술가들의 찬미의 대상이 되었던 화가다. 구혼자도 많았지만 결혼을 거부하고 독립적인 삶을 살다간 독신녀의 원조이기도 하다. 피니가 가부장제 남성사회가 강요하는 순종적인 여성상을 거부한 해방된 여자라는 증거는 유명한 일화가 말해준다.
어느 날 피니는 한 초현실주의자와 만나기로 약속한 카페에 추기경의 주홍색 예복을 입고 나타나 당돌하게 말했다. “나는 사제복을 몸에 걸쳤을 때의 신성모독적인 느낌이 좋다.”
이 그림의 메시지도 여성의 자의식과 정체성 추구다. 꽃처럼 화려한 술잔을 빌려 여성이 창조성의 근원이라고 말하고 있다. 심리학에서 그릇, 상자, 화덕처럼 오목한 형상은 여성의 성기를, 칼이나 창, 막대기처럼 길고 뾰쪽한 형상은 남성의 성기를 상징한다.
예술가로서의 명성은 일찍부터 얻었지만 그림은 독학으로 터득했다. 유럽의 미술관에 걸려있는 세계적인 명화가 그녀의 미술교사였다.
피니의 창작에너지는 남성 화가들을 능가했다. 책의 삽화, 무대 디자인, 카펫, 직물 디자인, 심지어 소설을 쓰기도 했으니 말이다. 오직 자신만이 삶과 예술의 주인공이라는 피니의 인생관은 어록에서도 드러난다.
‘나는 내게 운명 지어진 인생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게 될 거라고 늘 생각했어요. 그런 인생을 살기 위해선 저항해야만 한다는 것도 아주 일찍부터 알고 있었습니다.’
이 그림은 신념과 의지로 예술의 길을 개척했던 한 여성화가의 자화상이면서 자율적인 삶을 갈망하는 모든 여성들의 초상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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