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극작가 테너시 윌리엄스는 “돈 없이 젊은 시절을 보낼 수는 있지만, 돈 없이 늙을 수는 없다”는 말로 경제적 문제로 인한 노년의 어려움을 풍자했다. 그래서인지 서구 선진 사회에서는 일찍부터 인생 후반부에 대한 준비와 투자가 이뤄졌고 그에 따른 다양한 제도적 장치가 마련됐다. 연금자산을 통해 개인의 재정자립도를 확충할 수 있도록 공적연금과 퇴직연금, 개인연금의 3층 보장체계가 설계된 것이다. 장수시대에 노후의 생활자금이 부족하게 되는 ‘장수 위험’을 체계적이고 지속적인 연금자산 관리로 준비한 것이다.
이런 체계는 장수하는 것이 국가 경제에 부담으로 남는 것이 아니라 축복인 동시에 산업 활성화에 새로운 활력이 됐다. 인생 후반부에 대한 준비와 투자는 노후를 더욱 풍족하게 함으로써 궁극적으로 인생의 가치를 높이고 아울러 삶의 총체적 행복을 늘리는 역할을 하게 될 것이다.
우리나라는 인구 고령화에 대비한 국민의 재정자립도를 높이기 위해 1988년부터 국민연금제도를 시행했다. 2005년 말에는 퇴직급여의 수급권을 강화하고 노후 생활을 보장하기 위한 퇴직연금제도를 도입했다. 하지만 노후 소득으로서 연금자산에 대한 사회적인 인식은 아직 높지 않다. 2010년 민간 연구소에서 60세 이상 인구를 대상으로 가장 중요한 수입원에 대해 조사한 결과 연금자산이라는 답변은 13.2%에 불과했다. 미국 67%, 일본 67.5%, 독일 84.3%에 비하면 매우 낮은 비율이다. 그 이유는 외국의 경우 초고령사회로 진입하는 데에 길게는 100년 가까운 시간이 걸려 비교적 점진적인 변화가 가능했지만 우리는 불과 26년으로 그 기간이 매우 짧다는 데 있다. 그리고 또 한 가지는 퇴직연금이 노후 소득을 보장하는 중요한 방편이 된다는 인식이 아직 부족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국내 퇴직연금은 2010년 전 사업장으로 확대되면서 외형적으로는 지속적인 성장을 해오고 있다. 하지만 퇴직연금 도입 비율을 보면 근로자 수가 적은 중소기업은 가입률이 대기업에 비해 극히 낮다. 2012년 10월 기준으로 30인 미만 사업장의 퇴직연금 도입률은 11%로 500인 이상 대기업의 90%에 비해 크게 떨어진다. 우리나라 사업장의 95%가 30인 미만 사업장이며, 이 사업장에 종사하는 근로자가 전체의 50%를 차지한다는 점에 비추어 보면 중소기업의 낮은 가입률은 쉽게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퇴직연금이 근로자의 수급권을 보호하고 노후 소득을 보장하기 위한 것이라면 대기업보다 중소 규모 사업장의 근로자에게 더욱 절실한 제도이기 때문이다.
중소기업에 퇴직연금제도가 활성화되지 못한 것은 가입 절차가 복잡하고 사용자에게 추가적 비용 부담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규약 작성, 사업자 선정 등 제도 설계 단계에서만 몇 개월이 소요된다. 퇴직연금 가입 후에는 적립금 규모에 따라 수수료가 차등되는데, 적립금 규모가 작은 중소기업이 상대적으로 높은 수수료 부담을 진다.
퇴직연금 가입 절차 등을 대폭 간소화하고 비용 부담을 줄일 수 있도록 정부의 지속적인 제도 개선과 지원이 절실한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시장 논리로만 방치해 이들 사업장 근로자들이 퇴직 후에 재정 자립에 실패한다면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발생시키는 위험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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