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룸/이재명]박 대통령 나이 61, 대한민국 나이 65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6일 03시 00분


이재명 정치부 기자
이재명 정치부 기자
폭풍우가 거세게 몰아치는 한밤중에 차를 몰고 버스정류장을 지나게 됐다. 버스정류장에는 궂은 날씨에 간신히 몸을 피한 세 사람이 있었다. 할머니는 숨이 넘어갈 듯 기침을 콜록거렸다. 또 한 명은 늘 꿈꿔오던 이상형 여성. 그리고 마지막 한 명은 언젠가 나의 생명을 구해준 적이 있는 오랜 친구였다.

당신은 이 중 단 한 사람만을 차에 태울 수 있다. 과연 누구를 태울 것인가. 다음은 신입사원 채용면접에 응시한 수만 명 가운데 합격한 한 응시생의 답변이다.

“저 같으면 자동차 키를 친구에게 주어 할머니를 병원으로 모시고 가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는 그 자리에 남아 꿈에 그리던 여인과 함께 언제 올지 모를 버스를 기다리겠습니다.”(‘위트 상식사전’ 중에서)

무릎을 치게 만드는 명답이다. 하지만 이런 답을 떠올릴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행동에만 습관이 있는 게 아니라 사고에도 습관이 있다. 개인뿐 아니라 조직과 나라에도 습관처럼 굳어진 관행이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관료조직의 대혁신을 예고했다. 부처 간 칸막이를 뜯어내 국민 개개인을 위한 맞춤형 행정을 펼치고, 융합과 지속적 피드백을 통해 현장을 가장 중시하겠다는 약속이다. 얼마나 가슴 벅찬 일인가.

관료조직의 혁신은 국민만을 위한 게 아니다. 박근혜 정부의 성패가 거기에 달렸다. 4대강이나 수도 이전과 같은 대형 프로젝트가 없는 박 대통령은 두 개의 70%를 실현하느냐에 5년 뒤 성적이 매겨진다. 두 개의 70%는 고용률과 중산층 비율이다. 이를 위해서는 돈이 필요하다. 최소 135조 원이다. 이 돈의 60%(81조 원)는 세출 구조조정으로, 40%(54조 원)는 세입 확대로 만들겠다는 게 박 대통령의 구상이다. 이른바 6 대 4 원칙이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세계 어느 정부도 증세를 하거나 빚지지 않고 이 많은 돈을 만들어낸 적이 없다. 정부가 아껴 쓰고, 거두지 못한 세금을 찾아내 이런 돈을 만들 수 있다면 기존 관료들은 모두 구속감이다. 그동안 얼마나 펑펑 쓰고, 제 할 일을 안 했단 말인가.

6 대 4 원칙이 성공하려면 그만큼 관료들의 처절한 자기반성과 혁신이 선행돼야 한다. 기존의 모든 습관과 관성에서 탈피해야 한다. 박 대통령이 이루겠다는 게 바로 이것이다. 그럼 가장 먼저 무엇을 해야 할까.

미래창조과학부를 만들어 미래가 창조된다면 당장 세계최강국방부, 창의혁신교육부, 세계일류산업부를 만들면 된다. 하지만 조직이 바뀐다고 대한민국의 ‘갑’인 관료가 변하지는 않는다. 융합, 소통, 협치(協治)는 대통령의 지시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대통령부터 그렇게 사고하고 그렇게 행동해야 한다. 리더의 변화 없는 조직의 변화는 없다.

한 친박 핵심에게 이런 의견을 전했다. 그에게서 돌아온 답은 “그분 나이가 61세다. 지금 변한다는 게 쉽겠는가”이다. 대한민국의 나이는 65세다. 그분이 변하지 않는데 대한민국이 어찌 변할까.

이재명 정치부 기자 egija@donga.com
#박근혜#대통령#관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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