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환율은 전쟁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7일 03시 00분


미국 중국 일본 영국 등이 경기 부양을 위해 돈을 풀면서 세계 주요 통화에 대한 원화의 가치가 급등하고 있다. 주요 국가들의 양적 완화로 한국처럼 수출로 먹고사는 나라는 피해가 이만저만이 아니다. 특히 한국에 타격을 주는 것은 일본 엔화의 약세다. 일본의 아베 신조 총리가 ‘내수 진작’이란 명목으로 돈을 푸는 바람에 원-엔 환율은 1년 전 100엔당 1379원에서 26일 1183원으로 14%나 떨어졌다. 최근 주요 20개국(G20) 재무장관·중앙은행총재 회의에서 주요국들은 일본의 엔화 약세를 사실상 묵인했다. 아울러 차기 일본은행 총재에 추가 양적 완화를 주장한 구로다 하루히코가 내정됨에 따라 엔화 약세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전기전자 자동차 선박 등 주요 수출 품목이 일본과 겹치는 한국은 원화 가치가 오를 경우 해외시장에서 가격 경쟁력이 떨어지고 엔화 약세에 따른 환차손이 발생한다. 원-엔 환율이 10% 하락하면 한국의 자동차 수출액은 12%, 연간 5조7000억 원 정도 감소한다는 추산이다. 그렇다고 선진국들을 따라 돈을 마구 찍어낼 수도 없다. 원화를 풀어도 환율은 해결되지 않고 인플레이션에 시달릴 가능성이 높다.

경제가 새로운 활력을 찾지 못하고 가계부채 등 뇌관이 산적해 있는 마당에 환율 문제까지 겹쳐 경제 회복에 큰 장애가 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직전에 한국무역협회를 방문한 자리에서 “우리 기업이 손해 보지 않도록 선제적 효과적으로 환율 문제에 대응해 나가겠다”고 말한 것도 사정이 그만큼 절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환율은 정부 정책의 직접 목표가 될 수 없으며 시장원리에 따르는 것이 원칙이다. 원화 강세는 일본산 부품의 값을 떨어뜨려 고질적인 대일(對日) 무역적자를 줄이고 수입가격을 낮춰 물가를 안정시키는 긍정적 측면도 있다.

일각에서는 외환 거래에 세금을 붙이는 토빈세 도입을 거론하고 있으나 아직 이르다. 급격한 환율 변동에 조용하고 조심스럽게 대응하면서 나라 전체의 외환 건전성을 관리해야 한다. 환율 관리와 해외 경쟁력이 취약한 중소기업들은 마케팅과 연구개발, 금융 지원으로 도와줄 필요가 있다.

2005년 2월 원-달러 환율이 1004원(현재는 1088원), 원-엔 환율이 952원이었던 것과 비교하면 현재의 원화 가치가 그리 높은 것도 아니다. 양적 완화는 선진국들도 부작용 때문에 무한정 계속할 수 없다. 환율 여건이 어려운 현 상황을 기회로 삼아 제품 경쟁력과 브랜드 가치를 높이는 것만이 수출 경제가 살아남는 길이다.
#환율#세계 주요 통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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