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금요일 경주에 다녀왔다. 문화재 담당이니 짐 싸서 지방 찾는 거야 당연지사. 일이라도 천년고도를 찾아가니 마음 역시 가뿐하다. 바쁘단 핑계로 자주 못 가는 게 아쉬울 따름이다.
길 떠날 땐 책을 꼭 챙긴다. 허세가 아니라 서평 쓰는 게 업무다보니. 기차에서 책 읽는 재미도 쏠쏠하다. 보통은 문화재 관련 책을 집어 든다. 이번엔 달랐다. 진보정의당 소속이던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어떻게 살 것인가’(아포리아)를 담았다.
이유는 모르겠다. 기자로선 빵점 선택이다. 유 전 장관의 정계은퇴 선언 뒤라 책은 언론에 많이 소개됐다. 안철수 전 대선후보에 대한 언급도 다뤄졌다. 기사화할 일 없단 소리다. 근데 왜 그랬을까. 그가 어떻게 살지, 어쩌면 내가 어찌 살지 궁금했던가. 일단은 프롤로그에 꽂혔다고 해두자.
“마음이 고요해진다. 비행기에서 책을 읽는 것이 도대체 얼마만인가. 50분 동안 다른 생각은 하지 않고 독서에 몰입한 내가 자랑스럽다. 가슴에서 따뜻한 기운이 올라와 온몸으로 번져간다.”
온전히 작품만 갖고 얘기하겠다. 이 책, 마음에 든다. 대학 시절 유 전 장관 책을 읽긴 했는데 기억이 안 난다. 원래 이리 글을 잘 썼나. 호불호가 갈리겠지만 적절한 단문이 참 담백하다. 책 내용이 맞는지 아닌지는 상관하지 않으련다. 얼마 전 다른 책에서 읽은 문장 하나를 인용한다. “내 책이니 내 맘대로 쓰겠다.” 아암, 그렇지.
뭣보다 ‘어떻게 살 것인가’는 권위나 경륜을 내세우지 않아 좋다. 분명 젊은이들에게 들려주고픈 얘기를 하는데 강요하질 않는다. 생업을 ‘지식소매상’이라 소개하는 저자는 하고 싶은 일에 실컷 도전해보라고 조언한다. 본인이 정치를 관두는 이유도 하고픈 일을 하기 위해서란다. 축구에 빠진 아들에게 선수로는 자질이 떨어지니 평론가를 권하거나, 학생운동 하다 잡혀가 자술서 쓰다 글 솜씨가 늘었다는 고백은 위트가 넘친다. 자살을 떠올리는 이에게 무얼 택하든 ‘인간의 존엄’에 가치를 두고 고민하길 당부하는 대목도 와 닿는다. 무턱대고 자살은 죄악이라 몰아붙이는 이들보다 훨씬 설득력 있다.
물론 색안경 쓰고 보자면 한정 없다. 정계은퇴 직후 책이 나왔으니 상업성이 짙다. ‘직업으로서’는 관뒀다고 하나, OO으로서의 정치인으로 돌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러면 좀 어떤가. 백수 된 마당에 돈 벌어야지. 말 바꾸면 그때 가서 감당하면 된다. 성급히 재단할 이유가 없다.
다만 하나, 스스로 소매상이라 부르니 ‘정보도매상 직원’으로서 한 말씀 올린다. 유 전 장관께선 이제 결코 ‘동네 점빵’ 주인이 될 수 없다. 뭘 해도 세간의 관심을 끌 거란 소리다. 사상 성향 상관없이, 지금 이 땅엔 ‘멋진’ 어른이 한 명이라도 아쉽다. 후생(後生)에게 보낸 응원 메시지, 그대로 돌려드린다. 본인이 설파한 대로 맘껏 “놀고 일하고 사랑하고 연대하시라”. 기왕이면 근사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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