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박정훈]‘박근혜 전도사’ 이정현

  • 동아일보
  • 입력 2013년 2월 27일 03시 00분


박정훈 사회부 차장
박정훈 사회부 차장
이정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55)의 ‘새벽전화’는 공포 그 자체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변인 역할을 하던 2008년 무렵 그는 마음에 안 드는 기사를 쓴 기자에게 새벽부터 독기 서린 말을 퍼부었다. 수십 분간 흥분상태의 말을 듣는 고통은 상상을 초월한다. 당시 그에게 ‘새벽에 전화하지 마라. 힘들다’고 문자를 보냈더니 ‘그랬다면 성공이네’라는 답이 왔다. 기사 쓸 때 악몽을 떠올리게 하려는 전략이었다. 새벽전화의 목적은 분명했다.

그는 2007년 한나라당 대선후보 경선을 통해 박 대통령과 본격적인 인연을 맺었다. 포털에 ‘이정현’을 입력하면 가수 이정현이 뜰 때였다. 그는 다른 공보특보와 달리 중진의원 줄이 없는 찬밥 신세였다. 몸을 던져 일해도 핵심에서는 소외됐다. 당직자 시절에도 그는 혼자였다. 호남(전남 곡성) 출신인 데다 공채도 아니기 때문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기밀이 새나가면 그부터 의심을 받았다. 고향에선 “군사정권을 낳은 정당에 부역한 사람”이라고 냉대를 당했다. 정의감이 강한 사람이지만 늘 외톨이 신세였다. 19일 정무수석 내정 기자회견에선 “부족한 게 많고 그릇도 안 되는데…”라며 자의식의 단면을 드러냈다.

그는 눈칫밥을 먹으면서도 주군과 당에 대한 충성심으로 버텼다. 그만의 생존방식이었다. 그는 박 대통령과 자신의 미래를 철저하게 동일선상에 놓았다. 곁눈질 한번 안 했다. 2008년 비례대표 꼴찌 순번으로 국회의원이 되자마자 박 대통령 보좌진 네 명으로부터 보좌관과 비서관을 추천받았다. 갑(甲)을 알아보는 현명한 처신이었다. 그 뒤 “이정현의 말이 박근혜의 뜻이다”라는 말이 돌기 시작했다. ‘박근혜의 입’으로 공인된 것도 그 무렵이다.

박 대통령은 입장에 따라 말과 행동이 달라지는 사람을 유독 경계했다. 그 바람에 박 대통령과 멀어진 친박 인사도 많았다. 서울의 한 전(前) 재선의원처럼 의중을 멋대로 해석하다 괘씸죄에 걸린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수석은 달랐다. 욕먹는 일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한 친박 인사는 “박 대통령 명(命)이라면 폭설에서도 사흘은 너끈히 서 있을 사람”이라고 평했다. ‘정치적 경호실장’보다는 ‘종교적 전도사’라는 말이 어울리는 사람이었다.

찬밥덩이가 복심(腹心)이 되자 흉보는 사람도 늘었다. “이정현이 잘못 보필해 불통 이미지가 커졌다. 듣기 좋은 말만 하니 민심을 제대로 알겠냐”는 말이 친박에서 나왔다. 대선 후 이 수석이 주도한 국무위원 인사 검증에 대해서도 비난이 쏟아졌다. ‘언론만도 못한 부실 검증’ ‘최악의 인선’이라는 평이 나왔다. 그 사이 국정지지율 10%포인트가 허공으로 날아갔다. 여권에서는 “시키는 대로 하는 사람인데 대통령이 쓰겠다는 사람을 제대로 검증했겠느냐”는 비판도 많았다.

그런 사람이 정무수석이 됐다. 박 대통령은 자신을 가장 잘 알고, 믿을 수 있는 사람을 정치 메신저로 쓰려고 한 모양이다. 추잡한 뒷거래 관행을 끊고, 자신이 중시하는 원칙에 따라 문제를 풀어가겠다는 구상으로 보인다. 그런 틀에서라면 충직한 성직자 같은 이 수석이 적임이다.

종교에선 절대자의 메시지를 제대로 이해하고 실천하는 것이 소통의 본질이지만 정치가 종교처럼 될 리 없다. 선거로 뽑은 대통령도 ‘악의 축’으로 취급하는 게 한국정치다. 이런 상황에서 복잡하게 얽힌 현실정치의 실타래를 풀어내는 게 정무수석의 역할이다. 창의력이 필요할 때도 많다. 필요하면 대통령도 설득해야 한다. 안 그러면 청와대는 정치에서 고립된다.

이 수석은 “소통의 정무수석이 되겠다”고 했다. 대통령의 뜻을 국회에 그대로 전달하겠다는 의미는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이 수석은 누구를 위해 정치를 하고 있는지 스스로에게 물어야 한다. ‘박근혜 전도사’ 역할은 그제로 끝났다.

박정훈 사회부 차장 sunshade@donga.com
#이정현 대통령정무수석비서관#박근혜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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