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일인 어제 오전 9시 김행 청와대 대변인은 긴급기자회견을 열고 “국회가 정부조직법 개편안을 임시국회가 끝나는 5일까지는 통과시켜주기를 거듭 거듭 간곡하게 호소드린다”고 밝혔다. 오전 10시로 예정된 여야 협상과 오후 2시의 박근혜 대통령-여야 지도부 회담을 앞두고 ‘데드라인’까지 제시하며 ‘원안 처리’를 압박한 모양새다. 전날에는 허태열 대통령비서실장이 민주통합당 측에 청와대 초청 전화를 하고 수락 답변을 들을 새도 없이 윤창중 대변인이 “내일 청와대에서 회담이 열린다”고 발표하는 결례를 범했다.
이런 일이 겹치면서 박 대통령과 문희상 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과의 회담은 무산됐다. 박기춘 민주당 원내대표는 “(청와대가) 의전을 모르느냐. 내가 새누리당 지도부인 줄 아느냐”며 불쾌감을 감추지 않았다. 청와대 대변인의 무례와 조급증이 국정 운영을 헝클어뜨렸다고 비판 받아도 무리가 아니다. 이남기 대통령홍보수석비서관은 뒤늦게 “청와대 회담 제의를 야당이 받아들이지 않아 유감”이라고 했으나 다음을 위해서도 누가 더 책임이 있는지 따져볼 일이다.
새 정부는 출범한 지 일주일이 됐는데도 국무총리 한 사람 달랑 임명하고 장관은 한 명도 임명하지 못했다. 안보 위기, 글로벌 경제 위기에서 급박한 상황이 터지면 어쩔 것인지 국민은 불안하다. 정치 실종이자 불통이라는 비판을 들을 수밖에 없다.
오늘 아침 박 대통령이 대국민담화를 통해 국정 차질을 사과하고 국정 운영의 기조를 밝힌다지만 국민의 실망과 불안을 달래줄 수 있을지 의문이다. 청와대는 야당이 첫 회동을 거절한 데 대해 “대통령을 인정하는 건지 아닌 건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러나 박 대통령도 야당의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 민주당이 정치적 파트너 대우는 고사하고 무시당했다는 느낌을 받도록 해서는 곤란하다.
민주당도 대승적 차원에서 청와대 회담에 응하고 정부조직법 처리에 협조해야 국민에게 “달라졌다”는 평가를 받을 것이다. 청와대의 회담 제의가 매끄럽지 못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청와대와 여당이 정말로 몸이 달아 매달리는 것을 야당 압박을 위한 ‘꼼수’로 보는 것도 편견이다. 민주당이 집권했더라도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똑같이 매달렸을 것이고, 현재 ‘칼자루’를 쥐고 있는 것도 민주당이다. 박 대통령과 만나 의견을 개진하고 협상을 하는 게 순리다. 어려운 결단을 해야 민주당의 진정성이 평가를 받을 수 있다. 정부 구성이 늦어질수록 야당이 발목을 잡는다는 비난 여론도 높아질 것이다.
새누리당도 박 대통령의 입만 쳐다봐서는 안 된다. 정몽준 새누리당 의원은 “새누리당 지도부는 야당뿐 아니라 대통령도 설득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여당이 제때 제대로 제 할 일을 못하니 야당이 여당을 제친 채 대통령에게 결단을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