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과 내일/박용]용산 개발, 아직 기회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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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입력 2013년 3월 5일 03시 00분


박용 논설위원
박용 논설위원
용산(龍山)은 한때 서울 부동산 시장의 노른자위 땅이었다. 2007년 코레일 주도로 총사업비만 31조 원에 이르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의 윤곽이 드러나자 시장이 한껏 달아올랐다. 잠실 제2롯데월드(약 3조5000억 원)의 9배, 4대강 사업(약 22조 원)의 1.4배에 이르는 ‘단군 이래 최대 도심 개발’ 사업이었다. ‘용산 로또’라는 말까지 나왔다.

2008년 글로벌 경제위기는 장밋빛 용산 개발의 민낯을 드러낸 ‘진실의 순간’이었다. 부동산 시장이 무너지자 자금 조달 길이 막히고 사업 밑천은 바닥을 드러냈다. 사업 전망은 2조7000억 원 흑자에서 4조6000억 원 적자로 바뀌었다. 자금 조달을 두고 최대 주주인 코레일과 민간 투자자 간에 갈등도 불거졌다. 최근 부도 위기에 몰리자 양측이 자본금을 늘리는 증자에 합의했으나 돈을 대겠다는 투자자가 선뜻 나서지 않고 있다.

용산은 어쩌다 뱀 꼬리로 전락했을까. 노무현 정부는 2006년 고속철도 개발 과정에서 불어난 코레일의 빚 4조5000억 원을 철도정비창 터 개발 이익으로 해결하는 용산역세권 개발 사업을 들고 나왔다. 2007년 한강 르네상스 사업을 추진하던 서울시는 이 사업에 서부이촌동 개발 사업을 포함시켜 숟가락을 얹었다. 사업 규모가 31조 원으로 불어나고 애꿎은 서부이촌동 주민들까지 사업에 말려들었다. 중앙정부와 서울시가 각본을 쓰고 코레일이 연출을 맡자 민간 사업자도 개발 이익을 보고 뛰어들었다.

노벨 경제학상을 수상한 대니얼 카너먼 미국 프린스턴대 명예교수는 내부적 관점의 예측, 지나치게 낙관적인 계획 오류, 비합리적 인내가 사업 실패를 초래한다고 지적했다. 용산 개발에서도 이런 오류가 보인다. ‘코레일 경영 정상화’라는 내부적 관점의 개발 계획은 ‘36만 명의 고용 창출과 67조 원의 경제적 부가가치’를 기대하는 낙관적 전망만 부풀렸다. 한 부동산 개발 전문가는 “대형 사업을 진행하면서도 막대한 투자 유치와 분양 실패에 대한 위험을 과소평가했다”고 비판했다. 코레일은 경제위기 이후 계획 오류가 드러났는데도 사업 실패를 인정하지 않았다. 오히려 ‘비합리적인 인내심’을 발휘해 민간 투자자에게 유리하도록 3차례 계약을 변경해줬다. 사업성 논란이 불거지고 공기업의 자산을 이용한 개발사업이 누더기가 돼가는 동안 감사원의 제대로 된 감사조차 받지 않은 것도 납득하기 어렵다.

코레일은 사업 주도권을 쥐고 공영개발 방식의 단계적 개발을 추진하고 있지만 앞날은 불확실하다. 용산 개발을 되살리려면 내부의 눈이 아니라 외부의 관점으로 사업 규모, 개발 방식, 수익성을 재검토하고 사업 표류의 책임까지 철저히 따져 물어야 한다. 사업성이 없다는 판단이 나오면 매몰비용에 연연하지 않고 원점으로 돌려 피해를 최소화하는 ‘플랜B’까지 고려해야 한다.

영국의 마거릿 대처 총리는 1981년 런던 템스 강변의 버려진 부둣가인 카나리워프 재개발에 착수해 ‘시티 오브 런던’과 함께 세계적 금융 허브로 키웠다. 대처는 이 일대를 ‘기업 투자지구’로 정하고 세금과 규제를 완화하는 과감한 해외 투자 유인책을 내놔 템스 강변을 세계 자본의 젖줄로 바꿨다. 영국을 버리고 세계를 선택해 영국을 살린 것이다.

용산은 명성은 뒤떨어지지만 접근성과 도시 기반시설은 버려진 부둣가였던 카나리워프보다 낫다. 용산도 시장 변화에 맞게 투자자 관점에서 사업을 재설계하고 위험을 분산해야 승산이 있다. 정보통신기술(ICT) 의료 교육 법률 콘텐츠 같은 지식기반 서비스업의 규제를 획기적으로 푸는 ‘창조경제 특구’로 만들어 해외 투자를 유치하는 방안도 고려할 만하다. 최막중 서울대 교수는 “수익성과 함께 공공성을 대폭 강화한다면 특혜 시비를 최소화할 수 있다”고 말한다. 용산 개발은 아직 마침표를 찍지 않았다.

박용 논설위원 parky@donga.com
#용산#코레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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